(오사카=포커스뉴스) 이복형 김정남의 “살려달라”는 요청도 묵살하고 결국 무참히 독살한 김정은. 할아버지 김일성 아버지 김정일에 이은 3대세습 독재자 김정은의 혈통 논란이 끊이지 않고 제기된다.
친가(親家)만을 놓고 볼 때는 북한이 주장하는 '백두혈통'이라지만 일부에서는 외가(外家)를 거론하면서 김정은을 '후지산 혈통'이라고 깎아내린다. 김정은은 김정일의 세번째 부인이자 재일교포 출신 무용수 고영희 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신상정보는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다. 김정은 생모 고영희가 살았던 일본 오사카를 찾아 추적했다.
고영희는 1952년 6월26일 일본 오사카시(大阪市) 동남부에 위치한 이쿠노구(生野区) 쓰루하시(鶴橋)에서 태어났다. 쓰루하시 지역은 많은 재일 한국인이 사는 곳으로 유명하다.
고영희 출생 당시 이름은 ‘고희훈’이다. 일본 이름은 다카다 히메(高田姬). 고영희는 1962년 10월 북송선을 타고 북한으로 건너간 후 ‘고영자’로 이름을 바꿨다. 고영자에서 고영희로 또다시 개명했다. 이름에 ‘자(子)’를 쓰지 못하게 했던 북한당국의 정책에 따라서다.
김정은의 외조부이자 고영희 생부는 누구일까. 제주 출신 고경택인지, 북한 유도 창시자인 고태문인지 설이 분분하다. 이에 대해 국가정보원은 “고경택(1913-1999)이 고영희의 아버지이며, ‘히로타(廣田) 재봉소’에서 일하다가 함경북도 명간군에 정착한 재일교포”라고 밝힌 적이 있다.
고경택은 고영옥(高永玉·1876년생)의 아들이다. 1913년 8월14일에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에서 출생한 후 16세 때인 1929년 가족과 함께 일본 오사카로 건너갔다. 현재 제주시 봉개동에 고영옥의 묘와 그 아들 고경택 묘가 있다. 그러나 고경택은 시신이 없는 ‘허묘’다.
국정원이 밝힌 대로 고경택은 '히로타 군복공장’에서 일했다. 훗날 관리직까지 승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경택이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 군복을 공급한 공장에서 일했다고 해서 그를 향해 친일을 제기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재일교포들은 “배고프고 어려웠던 시절 일본에서 먹고살기 위해 군복공장에서 일했던 것만으로 고경택을 친일로 규정한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지적했다.
고경택을 기억하는 재일교포에 따르면 고경택은 여자 관계가 복잡했다. 고경택은 청주 한 씨라는 여인을 첫 번째 부인으로 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고경택은 청주 한 씨보다 두 살 많은 이맹인을 부인으로 뒀다. 또 양명녀라는 여인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양명녀가 이맹인으로 개명한 것인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고경택이 어느 부인과 사이에서 고영희를 낳았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이런 논란 속에서 일본 한 재일교포가 고경택의 부인이 일본인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고영희가 첫 번째 부인 한 씨에서 태어난 것은 아니다는 해석이다.
이름은 밝히지 않았지만 쓰루하시 역 부근에서 50년간 김치장사를 한 임 할머니(88)는 기자에게 “고경택 부인이 '이맹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고경택 일본인 부인은 고경택 모친과 함께 쓰루하시에서 간장장사를 했다”고 전했다.
고경택과 같은 제주도 출신인 임 할머니는 1930년 일본 오사카로 건너왔다. 고경택이 오사카 온 지 1년 뒤였다. 당시 제주도에서 온 고경택 가족과는 고향이 같아 친분이 각별했었다고 밝혔다.
임 할머니는 “고영희 친조모는 가무와 장구를 기가 막히게 잘해서 저녁이면 그 장구와 노래소리가 쓰루하시 한국인 거주지 내로 퍼졌다”고 회상했다.
고영희는 1962년 아버지를 따라 북한으로 갔다. 고영희 아버지가 북한으로 간 것은 당시 북한의 ‘재일교포의 귀환’ 프로젝트 일환이다.
임 할머니는 “고영희 생모도 훗날 고경택을 따라 북한으로 갔는지 알 수 없지만 당시 고영희 친조모와 모친은 북으로 가지 않고 간장장사를 계속했던 것으로 기억난다”고 말했다.
고영희 친조모와 모친은 얼굴이 참 예뻤다는 게 임 할머니의 회상이다. 고영희가 타고난 끼를 발휘하며 1971년 만수대예술단에 들어가 무용단원으로 활동했고, 얼굴이 예뻤던 것도 친조모와 모친의 피를 이어받았기 때문이 아닌가 라는 게 임 할머니의 설명이다.
고영희는 김정일 위원장의 아내 4명(김영숙·성혜림·고영희·김옥)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사랑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영희는 김정일과 사이에 정철·정은·일순 2남1녀를 낳았다.
고영희는 2004년 8월 프랑스에서 유선암 치료를 받고 귀국한 후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나이 52세였다.
김정은은 2012년 4월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 오른 후 생모 고영희의 우상화 작업을 추진했다. 하지만 적극 추진 못했던 것은 고영희의 출신성분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북한은 김정은이 권좌에 오른 후 김일성-김정일에 이은 ‘백두혈통’이란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언론은 김정은 외가를 들먹이면서 ‘후지산 혈통’이라고 깎아 내린다.
또다른 재일교포 70대 이 모씨는 "엄밀히 따지면 김정은은 후지산 혈통과는 거리가 멀다. 그의 외가만을 놓고 볼 때는 ‘한라혈통’인 동시에 ‘오사카 혈통’이 아닌가" 반문했다. 본사협약 포커스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