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아닌 ‘오늘’을 살자! 신성욱 교수

어린 나이에 얼마나 고통이 심했으면 생의 의지보단 죽음의 소망이 더 강하게 다가왔을까? 마침내 4개월이란 긴 세월 동안 고열에 시달리다가 마침내 건강을 회복하여 집으로 돌아오게 되고, 오랜 만에 학교에 가서 선생님과 친구들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2020-12-14     박동현 기자

어느 이발소 앞에 이런 메모가 적혀 있었다. “내일 오픈함.” 이발을 하러 찾아온 손님들이 실망하고 집에 돌아가 다음 날 다시 이발소를 찾았다. 거기엔 여전히 문이 닫혀져 있고 같은 메모만 적혀 있었다. “내일 오픈함.” 다음 날, 그 다음 날 계속 찾아와도 이발소 문은 열리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내일’은 우리를 실망시키기도 하고 지치게도 만든다.  티벳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내일과 다음 생(生) 가운데 어느 것이 먼저 찾아올지 우리는 결코 알 수 없다.”

‘내일’을 기다리다가 사고를 만나든지 해서 ‘오늘’ 세상을 떠날 수도 있단 말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한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 4:14)

‘내일’을 아주 가깝고 손쉽게 만날 수 있는 시간으로 볼 수 있겠지만, 지금 이 시각도 병이나 사고를 만나 모두가 경험하는 내일을 만나지 못한 채 오늘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하지만 언젠가는 우리 모두가 날마다 맞이하는 내일을 만나지 못한 채 오늘 세상을 떠나게 되어 있다. 그렇다. 대부분이 경험하는 내일은 오늘 세상을 떠나는 이들이 그렇게도 맞이하고파 했던 때임을 얼마나 알고 살아가고 있는지?

내게도 ‘내일’이 너무도 갈구되던 때가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감기가 들었는데 일주일이 지났음에도 낫지를 않았다. 기침 소리가 컹컹 짖는 개기침으로 바뀌었다. 가난하던 시절, 며칠 지나면 그냥 낫겠지 하면서 약을 쓰지 않다가 점점 기침 소리가 심각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도 많이 하고 꿈으로 응답을 많이 받으시던 어머니께서 잠에서 깨시더니만 날이 새면 병원에 가보자 하셨다.

아버지께서 무슨 일이냐 물으시니 지난밤에 꿈을 꾸셨는데,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아들을 빨리 병원에 데리고 가라 하셨단다. 면소재시 시골에 병원이 아닌 간호학교가 하나 있었다. 의사 한 두 사람과 간호사 몇 사람만 상주하는 병원같지 않은 병원이었다. 아침을 먹은 후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청진기를 가지고 내 폐를 검사를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왜 이리 늦게 오셨어요? 이대로면 45분 만에 죽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어머니는 기절하신 채 땅바닥에 쓰러지셨고, 나는 쓰러진 어머니를 붙잡고 두려움에 떨며 울기 시작했다. “45분 만에 죽습니다.”란 말이 계속 나를 두려움에 떨게 했다. 목이 막혀서 숨을 못 쉬어 죽는다는 것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당시 내 병명은 디프테리아였다. 내게 내일이 없다니 앞이 캄캄했다. 내게 남은 시간인 오늘도 밤을 새울 정도가 아니라 45분 만에 죽는단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부터 숨이 막혀오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은혜로 기적적인 사건을 경험하면서 병원에서 심각한 환자로 오래 지내다가 4개월 만에 회복되어 퇴원을 할 수 있었다. 매일 매순간 열이 40도가 넘는 상태로 심각한 고통 속에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긴 시간을 지내게 됐다.

목사님과 교인들이 자주 심방을 와서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해주셨지만, 고열의 고통에 견디기 힘들었던 나는 하루 빨리 죽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얼마나 고통이 심했으면 생의 의지보단 죽음의 소망이 더 강하게 다가왔을까? 마침내 4개월이란 긴 세월 동안 고열에 시달리다가 마침내 건강을 회복하여 집으로 돌아오게 되고, 오랜 만에 학교엘 가서 선생님과 친구들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45분 만에 죽는다!”는 의사의 사형선고를 받은 이후로 내게 변화된 습관이 하나 생겨났다.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는 의식 속에 시간의 중요성을 심각하게 자각하게 되었다. 그 결과 시간이 아까와서 잠을 몇 시간 밖에 자지 않게 된 것이다. 때문에 평생을 서너 시간 이상을 자지 않고 성경이나 책을 보든지 아니면 글을 쓰는 습관이 몸에 익숙해져버렸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벌써 주일 새벽 2시 반을 넘어서고 있다.

젊은 시절보다는 더 잠을 많이 자는 편이긴 하지만 아직도 잠자는 시간이 아까와서 일찍 자지 못하는 건 변함이 없다.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눅 12:40). 이 말씀처럼, 언젠가는 늘 접하는 ‘내일’을 보지 못한 채 ‘오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날이 내게도 홀연히 오게 될 것이다. 그날까지 덤으로 살아가는 인생이라는 의식과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 될 수도 있다는 종말의식으로 주님 주신 시간들을 최고의 것으로 남겨드려야겠다 다짐해본다. ‘내일’이 아닌 ‘오늘’을 최선을 다해 잘 살다 가자!

필자 신성욱 교수는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설교학 교수이다.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에서 공부했음, University of Pretoria에서 공부했음, Calvin Theological Seminary에서 공부했음, 총신대 신학대학원에서 언어학 전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