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최후의 만찬' 가롯유다는 어디에 있을까 오세열 교수

성경을 읽으면서 긍금증을 더하는 것은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부분이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아담과 이브는 낙원에서 추방된 후 어떤 삶을 살았을까 가롯유다의 생애는 어떤 것인가 예루살렘은 어떻게 로마에 의해 최후를 맞았는가 등이 그것이다.

2021-05-08     박동현 기자
왼쪽부터

서양에서 13이란 숫자는 불길한 숫자로 여겨지며 13공포증 문화가 형성돼 있다. 이는 레오나르도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를 판 가롯유다가 예수와 11제자 다음으로 열 세번째 참석한 사실에 기인한다.

미국 고층건물에는 13층이 없는 곳이 80%이고 공항에는 13번 게이트가 없다. 병원과 호텔에는 13호실이 없다. 이탈리아 피렌체 건물주소에는 12와 14사이에 13을 생략하고 12.5를 넣는다.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13을 불길한 숫자로 여긴다.

1년 12개월, 12궁도, 올림포스의 12신 등 예부터 12라는 숫자가 완전수로 여겨져 왔다. 사람들은 12보다 큰 13을 완전함을 초월하는 숫자로 여겨 불안하게 생각했다.

축구나 야구, 농구선수의 13번 등번호가 없는 것도 이에 기인한다. 13일이 금요일과 겹치면 나쁜 일이 생긴다는 소위 <13일의 금요일>이라는 영화와 미신까지 생겨났다. 그러나 13이 불길하다는 과학적 증거는 없다.

레오나르드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그림에서 가롯유다는 어디에 앉아 있을까?

다빈치는 최후의 만찬을 그릴 때 열두 제자들을 세 사람씩 네 그룹으로 나누어 구도를 정했다. 각자는 독특한 몸짓과 표정으로 서로 결합되어 있다. 다빈치는 유다를 그릴 때 특별히 다른 제자와 구별되는 두 가지 특징을 강조했다. 유다의 머리 위치가 12제자 중 가장 낮으며 얼굴의 표정은 어둡고 검게 표현되어 있다.

이 두 가지를 염두에 두고 그림을 관찰하면 가롯유다가 누구인지 금새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믿는 좋으신 하나님은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용서해 주신다. 그러나 성경은 죄의 사함을 받지 못하고 죽은 가롯유다에 대한 상세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그림의 왼쪽부터 12제자의 순서는 바로톨로메오, 세베대의 큰 아들 야고보, 안드레아, 베드로, 가롯유다, 요한, 예수,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도마, 빌립보, 마태, 다대오의 유다, 시몬의 순이다. 다빈치는 예수가 식사 전 너희 중 하나가 나를 배반하여 팔리라고 선언하자 12제자들은 음식을 먹는 것을 잊은 채 충격에 빠져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바로톨로메오는 왼쪽 끝에서 식탁에 두손을 짚고 서있다. 요한의 형, 세베대의 큰 아들 야고보는 팔을 펴서 베드로의 어깨에 손을 대고 있다.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는 가롯 유다 뒤에서 열 손가락을 펴서 놀라움을 표시하고 있다. 두 손바닥을 들어 보이며 마치 자신에게서 무엇인가를 멀리하려는 듯 행동하고 있다.

성질이 급한 베드로는 요한의 어깨를 잡고 누가 배신자인지 물어보려는 듯 일어서고 있는 데 베드로의 오른손에 식사때 쓰는 칼을 쥔 채 앞에 있는 유다의 옆구리를 본의 아니게 건드리자 유다는 놀라 팔꿈치를 식탁에 대고 있다. 유다 만이 앞으로 되어질 일에 대한 사정을 다 알고 있다.

요한은 예수의 오른쪽에 앉아 식탁 위에 손을 가지런히 놓고 베드로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유일하게 순교하지 않고 요한계시록을 기록했다 예수는 흥분한 주위에 휩싸이지 않고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예수의 왼편에 앉아서 양쪽 팔을 벌리고 비극을 예상한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의심많은 도마는 야고보 뒤에서 검지손가락으로 자기 머리를 가리키며 설마 나는 아니라는 표정을 보이고있다. 빌립보는 매우 슬퍼하는 얼굴모습으로 가슴에 두 손을 모으고 자신의 순결을 나타내고 있다.

마태의 경우 얼굴은 두 동료에게 돌리고 두 손은 예수쪽으로 뻗은 채 믿을 수 없다는 모습이다. 다대오의 유다는 갑작스런 사태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한 손을 식탁에 대고 있다. 제일 오른쪽의 시몬은 준엄한 표정을 짓고 있다.

왼쪽부터 바로톨로메오, 세베대의 큰 아들 야고보, 안드레아, 베드로, 가롯유다, 요한, 예수,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도마, 빌립보, 마태, 다대오의 유다, 시몬의 순서다.

성경을 읽으면서 긍금증을 더하는 것은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부분이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아담과 이브는 낙원에서 추방된 후 어떤 삶을 살았을까 가롯유다의 생애는 어떤 것인가 예루살렘은 어떻게 로마에 의해 최후를 맞았는가 등이 그것이다. 

필자

그래서 요한복음 21장 25절을 보면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고 말씀하고 있다. 다행한 것은 역사에 정사와 야사가 있듯이 요세프스와 같은 역사가가 저술한 <유대전쟁사>를 보면 로마 디도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이 어떻게 철저히 망하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중세유럽에서 가장 많이 읽혀졌던 <황금전설> 또는 <황금성인전>이란 책에는 성경에 나타나지 않은 가롯유다의 생애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제노바의 대주교 보라지네(1228-1298)로 전해진다. 유다의 부모는 유다가 자신의 민족에게 불행을 가져올 것이라는 예언 때문에 유다가 어렸을 때 그를 버렸다.

버림받은 유다는 카리오트 해변에서 어느 왕비에게 발견되었다. 후손이 없던 이 왕비는 유다를 친자식처럼 여겼다. 그러나 왕비는 나중에 친아들을 낳게 되었다. 어느 날 유다는 질투심에 사로잡혀 배다른 형제인 그 아들을 살해하고 예루살렘으로 도주했다.

유다는 12제자중 유일하게 갈릴리 사람이 아니었다. 예루살렘에서 유다는 빌라도의 신임을 얻게 된다. 빌라도는 유다에게 어느 집에 들어가 주인을 살해하도록 사주했다. 유다가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자 그 포상으로 빌라도는 유다에게 어느 나이 많은 과부를 아내로 맺어준다.

과부와 살면서 유다는 자신이 죽인 사람이 친아버지였다는 사실과 자신이 친어머니와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이 저지른 범죄의 진상을 알게 된 유다는 참회하면서 새로운 예언자 예수에게로 도망쳐 제자가 되었다.

베다니의 나병환자 집에서 마리아는 예수의 발에 비싼 향유를 붓고 자신의 머리털로 그 발을 닦았다. 그때 유다는 마리아에게 왜 이 향유를 3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않는가라고 나무랐다. 그러나 실은 유다는 회계를 맡으며 돈을 빼돌리는 도적이었다.

유다는 도적의 본성을 드러내 결국 은화 서른 닢에 예수를 팔아넘기고, 허공에 매달려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가롯유다의 생애를 보면 예수를 팔아넘긴 그의 행위가 우연이나 일시적인 충동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가 반복해서 저지른 악한 행위에서 나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