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 스톱, 화목 플랜팅.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튀르크의 군사들은 닥치는 대로 노획을 하고, 귀부인들과 여인들을 겁탈했습니다. 그래서 서로 얼굴이 반반한 처녀들을 겁탈하려고 칼부림을 하다가 그 아리따운 딸들이 팔다리가 잘려 죽기도 했습니다. 교회 사제들, 우리 같은 목사들은 목 베임을 당해 죽고 어린 아이들은 예배당에서 쓰던 휘장을 찢어 만든 밧줄로 묶여서 노예로 끌고 갔습니다
성경본문 사도행전 6:1~7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과부들이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온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콜라를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장로님들 동로마제국의 패망사를 아십니까? 동로마제국이 망했을 때, 콘스탄티노플(현재의 터키/이스탄불) 안에 있는 성소피아 성당을 비롯해서 100여개의 교회들이 다 이슬람의 모스크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얼마나 안타깝고 가슴을 치며 통탄할 일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동로마제국이 망하기 전의 상황과 지금 한국교회의 현실이 너무도 흡사하다는 것입니다. 미래학자인 최윤식 박사의 표현처럼, 한국교회는 잔치하는 시대가 끝나 버렸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한국교회의 이미지가 추락할 대로 추락하고 사회로부터 온갖 비난과 조소를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안에서는 끝없는 다툼과 분열, 밖에서는 온갖 언론과 이단의 공격 등으로 한국교회는 몸살을 앓으며 비틀거렸습니다.
그러다가 코로나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코로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전대미문의 사건이었습니다. 특별히 코로나는 반달리즘을 몰고 와서 한국교회뿐만 아니라 사회 전 분야를 셧다운 시켜버렸습니다. 공연이 제대로 이루어졌습니까? 거기다 불교, 가톨릭 할 것 없이 종교시설까지 셧다운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한국교회는 복음의 본질을 회복해야 합니다. 어느 시대, 어느 역사, 어느 교회나 복음의 본질을 잃어버리면 비본질이 복음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반드시 교회는 문제가 생기고 갈등하게 되어 있습니다.
동로마 교회가 그랬습니다. 성화(聖畫)숭배파와 성화 반대파가 끊임없이 교권 다툼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성화 숭배를 사모하는 황제가 나타나서 성화 숭배파와 손을 잡고 성화 반대파들을 아예 콘스탄티노플 도성 안에 살지도 못하게 하고, 저 동로마제국의 변방으로 쫓아내 버렸습니다. 그래서 교권 싸움에 밀린 성화 반대파들은 도성 안에도 못 들어가고 완전 마이너가 되고 아웃사이더가 되어서 변방에서 농사나 짓고 살았습니다. 그런 그들의 목표는 지금 교권을 잡고 있는 교회의 메이저들을 무너뜨리는 것과 비슷했습니다.
그들은 성화 숭배파들이 망하고 심지어는 동로마제국이 망해야 자기들이 사는 시대가 오리라고 착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슬람 세력인 튀르크족들과 손을 잡은 것입니다. 그냥 손을 잡은 것이 아니라 서로 결혼 관계로 사돈을 삼으면서 손을 잡은 것입니다.
그들과 힘을 합쳐서 동로마교회를 무너뜨리고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러기 위해 튀르크족들에게 동로마의 모든 정보와 상황을 가르쳐 준 것입니다. 그러면서 튀르크족들이 쳐들어오면 구세주가 온 것처럼 쌍수를 들고 환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과 힘을 합쳐서 콘스탄티노플 도성으로 조금씩 조금씩 진격을 해 나가는것입니다. 저는 이 사실이 우리 한국교회 현실과 너무너무 흡사하게 느껴진 것입니다. 한국교회도 교권 분쟁과 내부 파워 게임에서 밀린 사람들이 마이너가 되고 아웃사이더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의 목적은 오직 교회 안에 있는 메이저와 주도권을 가진 사람들을 공격하고 그들을 물러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대부분이 겉으로는 개혁이나 정의라는 구호를 내걸지만, 마음 속으로는 기득권을 잡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들의 힘가지고는 안 되니까 세상의 시민단체와 손을 잡고 언론플레이를 합니다.
교회 안에 기득권이나 주도권을 잡은 사람들을 공격하고 흠집을 내서 무너뜨리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들이 원하는 시대가 오고 자기들의 세상이 오는 줄 알지요. 그러나 천만에요. 결국은 한국교회가 함께 침몰하고 공멸하게 되는 결과만 나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동로마에서 변방으로 쫓겨난 성화반대파들이 그랬습니다. 성화숭배파가 무너지고 콘스탄티노플이 함락이 되면 자기들의 시대가 오고, 자기들의 세상이 오는 줄로 착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진해서 오스만 튀르크의 군사로 1만 5천 명이나 지원을 한 것입니다.
그때 콘스탄티노플을 방어했던 사람들이 7천 명이었다 하는데, 그 만 오천 명이 콘스탄티노플을 함께 지켜 주었다면 절대로 콘스탄티노플은 함락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더구나 콘스탄티노플에 ‘우르반’이라는 초대형 대포 제조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화약제조자가 돈을 받고 오스만 튀르크의 술탄 메흐메드 2세에게 가 버렸습니다. 거기서 역사상 가장 화력이 쎈 대포를 만들어서 콘스탄티노플 도성을 함락시켜 버린 것입니다. 한마디로 기독교인이 만든 대포로 기독교의 도성이 함락되고 만 것입니다.
오르반은 대포 제조 전문가이다. 철옹성을 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박살내자고 제안한다. 길이 8m, 무게 19t에 달하는 초대형 철제대포를 개발해 메흐메드에게 바친다. ‘다르다넬레스 대포(Dardanelles Gun)’라고 불리는 전대미문의 최신 병기다. 15세기 초는 화약이 막 전쟁에 도입된 시기이다. 그러나 대포무게 544㎏에다 지름 75㎝에 달하는 엄청난 대포 탄환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던 시기였다. 대형 대포를 통해 발사되는 탄환의 최대 사거리는 1.6㎞다. 부딪칠 경우의 파괴력은 특별하다. 두께 2m에 달하는 테오도시우스 성벽도 간단히 뚫을 수 있다. 헝가리 천재에 의한 기상천외한 상상력이 비잔틴 함락에 활용된 것이다.
무너진 것은 성벽 아닌 ‘설마’ 심리
다르다넬레스 대포는 15세기 탄생된 이래, 1807년 영국과의 전쟁 때까지 활용된, 터키의 국가적 프라이드이기도 하다. 비잔틴을 무너뜨린 세계 최대 대포라는 명성과 함께 현역으로 350여 년 동안 활동한 셈이다. 메흐메드는 콘스탄티노플 공격에 앞서 철저한 준비에 들어간다.
먼저 비잔틴과 주변 크리스천 국가와의 차단이다. 비잔틴이 위험에 처할 경우 도와준 지원군의 통로는 현재 불가리아 땅이다. 육지를 통해 유럽지원군이 도착해 도와줬다. 메흐메드는 불가리아 주변 땅을 공략해 북부 통로를 차단한다. 이어 성벽을 지키는 앞바다, 보스포루스 해협 반대편에 작은 성 하나를 짓는다. 다르다넬레스를 사용하기 위한 최전선 기지다. 21세기 들어 관광지로 활용되고 있는, 절경 속의 작은 성이기도 하다.
비잔틴은 메흐메드의 군사행동에 대해 의심을 품는다. 그러나 결론은 무시와 방관이다. ‘설마’라 믿으며, 조공 액수를 높이려는 ‘겁주기 게임’으로 풀이한다. 황금 조공의 규모를 한층 더 높인다. 비잔틴은 6세기 유스티아누스 황제 때가 최전성기다. 이후 계속해서 내리막에 들어선 나라다. 한때 세계 부(富)의 3분의 2를 가진 대제국으로 통했지만, 11세기 초 현재의 아시아 지역을 잃으면서 재력도 축소된다.
부자는 망해도 3대를 간다고 했던가. 내리막의 비잔틴이기는 하지만, 능숙한 외교와 중개무역을 통한 번영은 이후 수백 년 지속된다. 그러나 다르다넬레스를 앞세운 메흐메드의 야심 앞에 무릎을 꿇는다. 결국 공격 53일 만에 천년을 버티었던 성이함락된다.
놀라운 것은 당시 비잔틴의 방어규모다. 5만 명 시민과 7000명 비잔틴 군인이 전부다. 그나마 7000명 군인 가운데 2000명은 외국 용병이다. 테오노시우스 성벽의 총길이는 26㎞다. 2중 방어벽임을 감안하면, 대략 10m 간격에 1.5명씩 지킨 셈이다. 한꺼번에 몰려드는 10만 오스만 군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콘스탄티노플 도성이 함락되던 날, 메흐메드 2세가 백마를 타고 성소피아 성당 앞으로 갔습니다. 그때 만 명이 넘는 콘스탄티노플 교회 성도들이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지금이라도 어서 빨리 미가엘 천사를 보내 주옵소서, 그가 이곳에 와서 빛나는 검을 휘둘러 저 짐승 같은 이교도들을 보스포러스 해협 바깥으로 물리쳐 주옵소서.”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는 날 백마를 탄 메흐메드2세가 성소피아 성당 안으로 들어오면서 이런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주러 왔노라, 내가 어릴 때 우리 어머니에게 배웠던 기독교는 싸우는 종교가 아니었다. 하나님을 잘 섬기고 이웃과 평화롭게 살아가게 하는 것이 기독교라고 들었다,
그런데 내가 자라서 본 기독교는 그렇지 않았다. 한 하나님을 섬기고 한 예수를 믿으면서 왜 늘 기독교는 싸우기만 한단 말이냐, 그래서 내가 너희들에게 알라의 이름으로 평화를 주러 왔노라"
세상에 이교도의 왕에게 이런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들어야 했으니 이 얼마나 뼈아픈 역사의 수치입니까?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는 이런 역사를 통해서 준엄한 경종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콘스탄티노플이 점령이 되었을 때, 동로마 교회의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비참한 최후를 맞았는지 아십니까?
튀르크의 군사들은 닥치는 대로 노획을 하고, 귀부인들과 여인들을 겁탈했습니다. 그래서 서로 얼굴이 반반한 처녀들을 겁탈하려고 칼부림을 하다가 그 아리따운 딸들이 팔다리가 잘려 죽기도 했습니다. 교회 사제들, 우리 같은 목사들은 목 베임을 당해 죽고 어린 아이들은 예배당에서 쓰던 휘장을 찢어 만든 밧줄로 묶여서 노예로 끌고 갔습니다. 그토록 무참하게 콘스탄티노플 도성은 정복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렇게 성이 무너지자 콘스탄티노플 도성 안에 있는 성소피아 성당과 삼위일체 교리를 확립한 '이레네 교회'를 비롯해서 100여 개의 교회가 이슬람의 모스크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터키는 99.5%가 무슬림화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훗날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이슬람이 동로마제국을 점령하자 서구 유럽과 교황청까지 점령하려고 30만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출정을 했습니다. 그 전투가 유명한 비엔나전투였습니다. 당시 비엔나에는 1만 5천 명의 군사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유럽의 관문인 비엔나가 무너지면 유럽 전체가 이슬람화가 되어 버릴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베네치아의 수도사였던 마르코가 영웅처럼 나타나 강하게 호소했습니다.
“여러분, 유럽교회가 하나가 되어 이슬람을 물리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서유럽도 동로마처럼 이슬람화 되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서구 기독교 국가와 교회들이 총집결하기 시작했습니다. 특별히 오스트리아와 정치적으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폴란드의 왕, 얀 소비에스키가 있었습니다. 레오폴드 1세가 신성로마 제국의 황제였는데 얀 소비에스키를 갈아치워 버리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폴란드 왕 얀 소비에스키는 6만의 연합군(어떤 기록은 8만)을 조직해서 비엔나를 구하러 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리 레오폴드 1세가 증오스러워도 비엔나가 망하면 폴란드도 망하고 유럽도 없게 될 것이다. 유럽의 교회도 몰락하고 이슬람 천지가 되어 버릴 것이다. 그러면 구교도 없고 신교도 없게 된다. 그러니 나라도 일어나서 비엔나를 지키리라.”
그러나 무스타파는 소비에스키가 온다고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미 70대 고령이 되어 말도 제대로 타지 못하고 칼도 못 잡는 노인에 불과하다고 무시했습니다. 그러나 소비에스키는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기상천외한 전략을 구사합니다.
그는 이슬람 군대의 시선을 피해서 해발 550m나 되는 칼렌버그 산 정상으로 대포를 직접 옮긴 것이다. 맨몸으로 올라가는 것도 힘든데 70대 노구를 이끌고 손수 대포를 밀며 정상까지 오릅니다. 그는 칼렌버그 정상에서 먼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 후에 군사들에게 웅변을 하였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비엔나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유럽의 교회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연합하여 죽을각오로 싸우면 유럽을 지키고 기독교를 지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스만튀르크군 30만 명이 진을 치고 있는 본진을 향해서 대포를 비 오듯 퍼부었습니다.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무스타파와 30만 명의 군사들은 순식간에 혼비백산하요 살아남은 자들은 뿔뿔이 흩어져 도망을 처버렸습니다.
그러자 소비에스키가 이끄는 최정예 기병대, 윙드 후사르가 비호같이 벌판으로 내려가서 공격하였습니다. 그 결과 7만 명의 군대가 30만 명을 완전히 초토화 시켜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오스만튀르크는 비엔나전투로 인해 유럽에서 완전히 패권을 잃어버리고 쇠락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소비에스키는 정말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없었으면 어찌 유럽의 그 찬란한 교회 건물과 기독교 예술 작품, 베토벤, 바하, 헨델의 음악이 나올 수 있었겠습니까? 아, 얼마나 멋진 남자입니까? 얼마나 통크고 멋진 지도자입니까? 오늘 이 시대는 이런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좁쌀 같은 마음과 쓸데없는 우월감, 자기 혼자 잘나고 스타 의식을 가진 사람이 아닌, 대의명분과 하나님의 뜻과 교회 전체를 살리기 위해 양보하고, 섬기고 세워주는 지도자가 필요한 때입니다. 자신의 사익만을 좇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위하는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오늘 우리 한국교회는 어떤 모습입니까? 콘스탄티노플의 모습입니까? 비엔나의 모습입니까? 한국교회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코로나가 왔을 때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우왕좌왕하였습니다. 저는 코로나가 처음 터질 당시 부총회장(합동)이었는데, “선제적으로 방역 매뉴얼을 만들어 대응하자"고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제가 총회장도 아니고, 연합기관(한교총) 대표회장도 아니었기에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한국교회 지도부가 결단을 못 하고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정부의 방역 본부가 개입을 하게 되고 그냥 지침을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산발적으로 저항하는 교회가 있었지만, 전혀 언론이나 사회에 주목받지 못하고 오히려 교회가 이기적인 단체나 이너카르텔 집단으로 비춰지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코로나의 확산세가 조금 누그러지자 제가 예배 회복 운동을 앞장섰습니다. 그리고 이때라도 우리가 방역 매뉴얼을 만들어서 우리가 스스로 방역을 철저히 할 테니 정부가 예배에 대해 간섭하지 말라고 딜을 하자고 했습니다.
저는 그때 현직 내과의사이자,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우리 교회 이재훈 강도사님에게 방역 매뉴얼을 만들어 보도록 했고, 그 매뉴얼을 가지고 한국교회 전체가 단합해서 정부가 간섭하지 못하도록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러고 있는 사이에 바로3차 팬데믹이 터져 버렸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총회장이 되고 한교총 대표회장이 될 때는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투쟁도 하고 또 협상도 해야 했습니다.
저는 정부의 교회에 대한 방침의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비판하면서도,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 끈질긴 대화와 설득을 통해 문제점을 개선해 나가려고 했습니다. 제가 한교총 대표회장으로서 정부와 협상을 하니까 저를 엄청나게 공격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골고다 언덕에서 흘려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한 피로 한 형제가 되고 자매가 된 우리 아닙니까? 성령 안에서 한 권속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영적 가족이 아닙니까? 그런데 왜 우리가 서로 다투고 싸우며 분쟁해야 한단 말입니까? 무조건 중단해야 합니다. 무조건 멈춰야 합니다.
그런데 주로 싸우는 사람들을 보면, 그 사람 편에서는 다 옳은 말을 합니다. 그들도 법과 정의를 이야기하고 윤리와 도덕성을 이야기합니다. 또 교회의 개혁과 갱신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내면을 파고 들어가 보면, 서로 정치적 기득권을 잡기 위해서 교권 싸움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사욕을 개혁이나 정의, 윤리와 도덕으로 포장을 해서 자기만의 바벨탑을 쌓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실상은 하나님 보시기에 그들이 다 육갑을 떠는 행위입니다. 그렇게 다투고 싸움으로써 얼마나 우리는 세상 언론으로부터 비난을 받고 조소를 당했습니까? 아니, 이단으로부터 얼마나 비아냥거림을 받고 공격을 받았습니까? 뿐만아니라 얼마나 많은 지성인과 젊은이들이 한국교회를 떠나갔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분쟁을 멈추고 화목과 하나됨으로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다시 한번 부흥의 역사를 사모하고 갈망해야 합니다. 60~70년대 우리 신앙의 선진들처럼 부흥의 역사를 사모하고 갈망하는 처절한 절규와 몸부림이 있어야 합니다. 마치 메마른 대지에서 두 팔을 벌리고 비를 사모하는 농부처럼 갈망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박국 선지자는 수년 내에 부흥을 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며 눈물로 부흥을 사모하지 않았습니까? 우리 한국교회 안에 다시 부흥의 바람이 일어나야 합니다. 부흥의 바람이 불어와야 부흥의 파도가 넘처나야 합니다. 그럴 때 한국교회가 다시 일어나고 부흥의 영광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국교회가 일어나고 또 다른 부흥의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다시 한국교회가 성숙할 뿐만 아니라 숫적, 양적 부흥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사도행전 6장을 보면 분쟁하던 예루살렘 교회가 다시 말씀과 기도로 돌아가고, 부흥을 사모하며, 예배가 회복했을 때 더 큰 부흥의 역사를 이루었지 않습니까? 더 제자의 수가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가 주님께 돌아오는 부흥을 이루었습니다.(행6:7)
오늘날도 인터넷상에서 교회를 비난하는 안티 크리스천의 무리들이 교회로 돌아오는 역사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비난했던 기자들, 방송국 PD들, 이런 분들도 그리스도의 도에 복종하고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됩니다. 우리가 부흥을 사모하고 부흥의 바람이 일어나고 파도가 일어나면 됩니다. “주여, 우리교회에 부흥을 주옵소서. 한국교회가 부흥의 영광, 부흥의 전성기를 다시 맞게 하옵소서."
제48회 전국장로수련회(회장 류재돈 장로)가 ‘주여 화목하게 하소서(고후 5:17~19)’ 주제로 (7월6일-8) 더 케이 호텔 경주 컨벤션 홀에서 진행되었다. 소강석목 사는 첫날(6)날 밤 수요예배시간에 강의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