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성서.교회.여성" 배현주 교수 (부산장신대)
한 교회에 여목사를 부목사로 추천했더니, 그 교회의 남자 부목사들이 전원 반대. 이유는, 함께 축구를 할 수 없고, 함께 사우나도 갈 수 없고, 교역자 수련회를 하면 방 하나를 별도로..
I. 교회개혁과 여성
올해 한국 교회와 신학계에는 종교개혁(교회개혁) 500주년을 기리는 많은 행사들이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자정 능력이 소진된 교회,’ ‘미래가 없는 교회,’ ‘영적 치매에 걸린 교회’ 등 한국 교회에 대한 여러가지 가슴 아픈 진단이 수면 위로 부상되어 사회적 주목을 끌기도 하였다.
공교회성의 상실로 인한 개교회주의, 교회의 대기업화, 사유화, 물질주의, 교단주의, 기복주의 등 한국 교회 안에 ‘죽음에 이르는 병’을 불러일으킨 많은 요인들이 교회 안팎에서 회자된 지는 오래되었다.
“이게 나라냐”를 패러디한 “이게 교회냐”는 냉소적인 자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과거 고난과 궁핍의 시대에 우리 사회의 정신적 지도력으로 부상하였던 한국 교회가, 물질적 풍요의 시대에 종종 사회의 지탄을 받는 조직이 되었다는 것은 매우 쓰라린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위로와 힘을 주는 일들에서만이 아니라 우리의 일그러진 민낯을 들어내고 부끄럽게 만드는 일들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해야 한다는 영성가들의 충고에 동의한다면, 올해는 은혜의 해이다. 우리의 짙은 어둠을 인정할 때, 참 빛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겸허함을 되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를 교회답게’ 세우고자 하는 열망 속에서 제기되는 건설적 비판과 진지한 실천 사례에 관한 소식은 희망의 징조이다. 그런데 교회의 남성중심주의와 가부장주의 문화가 지닌 반개혁적 위력을 지적하고 염려하는 음성은 딱히 들리지 않고 있다.
교회와 같은 종교 조직은 사회의 다른 어느 조직보다도 과거 전통과의 연결이 견고하다. 종교 조직은, 폭압적인 강제 조직이나 경제적 이윤이라는 공동 목적을 지닌 공리 조직과는 달리, “가치관”을 중심으로 모인 규범 조직이고 “가입과 탈퇴에 있어서 어떤 외적인 강제가 작용하지 않는 자유로운 자원적 결사체”이다.
따라서 자발적으로 선택한 교회가 전통적인 파라다임 속에서도 영적 도움, 일정 수준의 도덕적 성취감, 교제의 기쁨, 공동체 소속감 등을 부여하는 경우, 신도들은 이런 유익이 주는 긍정적 효과 때문에 교회 전통에 배어 있는 성차별의 문제를 자각하지 못하게 되거나. 혹은 문제를 느껴도 굳이 지적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설사 필요를 느낀다고 해도 교회와 신학의 전통적인 파라다임 속에서는 해답을 찾기가 힘들기 때문에 한 개인이 의문을 표출하고 변화를 촉발시킬 과정을 창출할 의지를 갖기가 쉽지 않다. 성차별적 설교와 관행에 실망한 신도들이 문제를 제기하기보다는 조용히 교회를 떠나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교회 내 성차별이 사회 다른 영역에서보다 더 오랜 기간 지속되고, 오늘날 심지어 ‘문화적 게토’ 같다는 극단적인 인상까지 초래하게 되었다.
법학부 교수인 한 남성 기독교인은 본인이 “남자는 여자의 머리다”라는 말을 대학 강단에서 하게 되면 성차별적 언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교수직을 떠날 수도 있는데, 교회에서 같은 말이 나오면 “아멘”으로 화답하는 현실을 놓고, 한국 교회가 사회에 비해 여러 가지 문화 지체 현상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예로 지적한다.
어느 원로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한 교회에 여목사를 부목사로 추천했더니, 그 교회의 남자 부목사들이 전원 반대를 해서 부임이 좌절되었단다. 반대의 이유는, 함께 축구를 할 수 없고, 함께 사우나도 갈 수 없고, 교역자 수련회를 하면 방 하나를 더 구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나마 여성 안수를 허용하는 교단에서조차도 이러한 정서와 일상이 규범이 되어 있다면, 여성 안수를 허용하지 않는 대다수 교단의 정서와 일상이 어떠할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한국의 지역교회, 노회, 총회, 신학교육기관의 리더십은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전원 남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교회 리더십의 배타적인 남성문화는 이따금 로마제국 군인들의 밀의종교였던 미트라교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초대교회는 남성중심적 할례가 아니라 남녀포용적 세례를 통해서 그레꼬 로마 세계의 여성들을 적극 영입하였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갈 3:28)라는 말씀은 성령 충만했던 초대교회의 세례고백문이다.
초대교회는 인종, 계급, 성을 뛰어넘어 모든 인간이 주의 형상으로 변화 받을 수 있는 고귀한 존재라고 선언하였고(고후 3:18), 이 확신은 교회 생활에서 실천되었다. 여성들은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하는 싸움을 경주하는 교회 운동의 중요한 주체들이었다(엡 6:12).
그러나 교회의 제도화가 심화될수록 여성들은 ‘제2의 성’으로 전락되었다. 남성은 하나님 앞에서 특권적 존재가 되었으며, 여성은 제단과 강단에서 소외되고 교회의 공적 리더십에서 배제되었다. 교회의 조직과 문화는 여성의 몸과 본성을 폄하하는 여성차별적·여성혐오적 신학의 온상이 되었다.
중세 수도원 전통 속에서 여성 신비가들은 교회의 제도적 타락에도 불구하고 주변부에서나마, 그리고 제한적으로나마, 영적 정신적 자원을 독창적으로 계발하며 자유인으로서의 존재감을 구가하고자 하였다. 종교개혁이 여성에게 미친 영향에 대한 평가는 양면적이다.
기독교 신학의 뿌리깊은 여성차별적·여성혐오적 전통은 한국 교회에 스며있는 여성비하적 토양에 잘 접목되었다. 이조시대 유교가 강화한 남존여비의 가부장주의, 일제 강점과 전쟁과 군사독재로 점철된 20세기의 사회와 생활세계에서 일관적으로 수행된 여성비하적인 남성중심주의 등 한국 사회를 압도하는 생활과 인간관계의 문법은 곧 한국 교회의 토양이 되었다.
교회개혁의 문제는 기독교적 ‘가치관’을 재정립하는 문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교회의 여성문제는 단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기독교적 인간관, 교회론, 하나님 나라 운동과 새로운 문명의 비전 등과 직결되는 신앙적 가치관의 문제이다.
그리고 이 가치관은 기독교의 경전이자 문명의 고전인 성서의 해석 문제, 그리고 신학교육의 방향에서 들어난다.
<편집자 주> (2017년 12월 9일 13-16시 아현성결교회 모리아성전에서 진행된 "2017 한국신약학회 제2차 포럼" 배현주 (부산장신대) 교수의 기조연설 원고를 받아 게재한다. 배 교수 연설원문에 포함된 참고문헌은 포함하지 않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