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죄에 대해 ‘고이 잠드소서!’(R.I.P.)라 작별인사를 고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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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칼럼 )죄에 대해 ‘고이 잠드소서!’(R.I.P.)라 작별인사를 고할 수 있을까?
  • 박동현 기자
  • 승인 2020.06.11 2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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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성경이 언급하고 있는 방식과는 다르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내게 비슷한 분노를 사게 한 또 한 권의 책이 있다. 존 오웬(John Owen)의 『죄 죽이기』(The Mortification of Sin)(크리스천다이제스트, 2020)란 책이다.
필자 신성욱 교수
필자 신성욱 교수

‘TheSpiritof Elia of Ministry International’의 설립자이자 전무인 Norm Wakefield가 쓴 “Who Gives a R.I.P. about Sin? Breaking Sin's Death Grip on Your Life”란 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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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한글번역자는 제목을 다음과 같이 달았다.

‘누가 죄를 상관없다 하는가? 죄의 권세를 이기는 은혜의 7가지 원리’ (Downers Grove, IL.: IVP, 2004).

이 글의 한글 제목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제목이란 책 내용 전체를 대변해주는 간판과도 같다. 이렇게 중요한 제목을 한 눈에 쏙 들어오는 쉬운 의미로 번역하지 못했으니 좀 화가 났다.

누가 죄를 상관없다 하는가? 죄의 권세를 이기는 은혜의 7가지 원리. ‘누가 죄를 상관없다 하는가?’라고 하면 어떤 의미인지 쉽게 이해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Who Gives a R.I.P. about Sin? Breaking Sin's Death Grip on Your Life.

이 영어원제를 어떻게 번역해야 이 책을 손에 든 독자들의 마음을 끌어당길 수 있을까? 이렇게 번역해보면 어떨까? 『누가 죄에 대해 ‘고이 잠드소서(R.I.P.)!’라고 말하는가?

당신의 삶을 지배하는 죄의 권세 깨뜨리기』. 보다 이해를 쉽게 해주는 번역으로 다음 내용은 어떨까? 『죄에 대해 ‘사망!’이라고 감히 선고 내릴 자 누군가? 삶을 지배하는 죄의 세력 깨부수기』.여기서 ‘R.I.P.’는 ‘Rest In Peace’의 줄임말로 고인을 향해 ‘고이 잠드소서!’라고 하는 마지막 인사말이다.

서두에서 이 제목을 한글로 번역한 이에 대한 언짢은 마음을 소개했다. 하지만 이 책의 원저자에겐 보다 큰 분노가 느껴졌다. 왜냐 하면, 이 책의 내용과 그것을 두 마디로 반영한 책 제목 때문이었다.

‘책 제목이 어때서?’라고 따질 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이유를 말하자면,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성경의 내용과는 전혀 다른 방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Who Gives a R.I.P. about Sin? 

이 책에 대하여 글로리아 개블러(Gloria Gabler)가 추천한 내용처럼 노옴 웨이크필드는 우리 삶을 지배하는 죄의 힘을 관 속에 넣고 단단히 박아 버릴 못을 건네준다. 이 책에 따르면, 죄인 된 우리는 육신에서 영적인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남으로써 죄가 우리 안에 틈타 밀려들어오지 않도록 해야 하며, 그리스도와 성령을 통해서 죄와의 싸움에서 승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성경이 언급하고 있는 방식과는 다르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내게 비슷한 분노를 사게 한 또 한 권의 책이 있다. 존 오웬(John Owen)의 『죄 죽이기』(The Mortification of Sin)(크리스천다이제스트, 2020)란 책이다.

오웬이 어떤 분이던가? 그는 ‘최후의 청교도 신학자’, ‘청교도 황태자’라 불릴 만큼 대단한 신학자였다. 로이드 존스 목사가 결혼선물로 그의 전집을 요청할 정도로 위대한 청교도 중 한 분이었다.

“나는 <죄 죽이기>에 가장 많은 빚을 졌다. 이 책은 영적 금광이다.” 제임스 패커(James Packer)가 이렇게 표현할 만큼 이 책은 오랜 세월 많은 이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보고로 알려져 왔다.

이 책에서 존 오웬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죄가 단지 우리 안에 거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활력과 힘이 있어, 우리를 악에 끌리게 하거나, 선한 일을 하지 못하게 방해하거나, 우리 영혼이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을 훼방한다.

그러니 우리가 죄를 죽이는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면, 죄의 결과들이 생산해내는 열매가 우리 삶에 가득할 것이라고 말이다. 때문에 우리가 죄로부터 안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끊임없이 싸우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또 오웬은, 신자가 죄를 완전히 죽이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하지만, 실제로 그 목표를 이 땅 따라서 이미 죄의 지배에서 벗어난 신분을 가진 신자는 성령을 통해서 죄의 성향을 약화시켜서, 자신의 삶 속에서 지속적으로 대부분의 경우에 죄를 이기고 선과 의와 거룩함을 이루는 삶을 사는 삶을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웬의 책 역시 심각한 문제가 있다. 우선 『죄 죽이기』란 제목 자체부터 비성경적인 내용임을 감지해야 한다. 그럼 성경적인 제목으로 바꿔보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지 않은가? 먼저 첫 번째 책에 대한 얘기부터 다시 해보자. 『Who Gives a R.I.P. about Sin? Breaking Sin's Death Grip on Your Life』. 『누가 죄를 상관없다 하는가? 죄의 권세를 이기는 은혜의 7가지 원리』로 번역했다.

『The Mortification of Sin 책 커버

이 책의 이름을 성경적으로 수정해보면 다음과 같다. 『Bible gives a R.I.P. to Us about Sin? Declaration of Our Death to Sin』. 『성경은 우리가 죄에 대해 사망했음을 선고함. 죄에 대한 사망선고』. 다음은 『죄 죽이기』이다. 이 책의 원제는 『The Mortification of Sin』이다. 원어대로 번역하면 『죄의 굴욕』이라 할 수도 있고, 『죄의 파멸』이라 할 수도 있다. ‘Mortification’을 ‘굴욕’이 아닌 ‘죽이기’ 혹은 ‘파멸’로 해석한다면 이보다 비성경적인 제목은 없을 것이다.

이것을 성경적으로 수정하면 어떻게 될까? 『Our Death to Sin』, 『죄에 대한 우리의 죽음』이 되어야 한다. 위의 두 책 제목에 대하여 비판하면서 성경적으로 제목을 바꾸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를 소개했다. 그 이유를 설명하고 정리해보자. 성경은 죄와 우리와의 관계성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롬 6:2).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 죽은... 자로 여길지어다“(롬 6:11).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롬 6:4).

여러 구절들이 우리가 죄에 대해서 죽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 죄는 결코 죽지 않고 죽일 수도 없다. 때문에 유일한 방법은 죄에 대해서 내가 죽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께서 죽으실 때 우리도 죽는 방법을 택하신 것이다. 롬 7:1~3절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폭군 남편과 결혼한 아내가 그 남편으로부터 해방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남편은 죽지 않는다. 유일한 방법은 남편으로부터 내가 죽는 것이다. 그러면 그때부터 나는 남편에 대한 법적인 매임에서 해방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새로운 선한 남편인 예수 그리스도와 결혼하여 그분의 신부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죄를 죽일 수도 없고 죄에 대해서 ‘고이 잠드소서!’라고 작별인사도 할 수 없다. 도리어 죄에 대해서 내가 죽었다는 성경의 진리를 들어야 한다. 성경은 죄에 대한 우리의 사망을 오래 전에 선고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 다시 살고 그분의 신부다운 존재로 대체하기를 원하신다. ‘변화’(change)가 아니다. ‘교환’(exchange)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그분의 신부로 교체되고 대체가 되는 것이 복음이다.

비록 우리가 중생한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육신이란 한계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금식하고 기도하고 성령의 능력을 받는다 할지라도 크게 변화하거나 성장할 수가 없다. ‘변화’와 ‘성장’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것으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온전한 삶을 살아낼 수가 없다. 불가능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용하신 방법이 ‘교환’ 혹은 ‘대체’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방식이다. 그러지 않으면 대책이 없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기 때문에 그리스도로 대체된 삶, 그분으로 하여금 내 인생의 키를 들고 삶을 대신 살도록 날마다 나의 주권을 내어드리고 의지하는 삶이 승리하는 신앙생활의 유일한 방법이다.

천국으로 가는 여정 동안 꼭 기억해야 할 한 문장은 이것. “‘변화’(change)가 아니라 ‘교환’(대체, exchange)”

글을 주신 신성욱 교수는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설교학 교수,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에서 공부했음, University of Pretoria에서 공부했음, Calvin Theological Seminary에서 공부했음,총신대 신학대학원에서 언어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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