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Face or Face book ?(하나님의 얼굴과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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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s Face or Face book ?(하나님의 얼굴과 페이스북)
  • 박동현 기자
  • 승인 2020.06.21 0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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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나님의 얼굴(Face)보다는 페이스 북(Facebook)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하나님 말씀(Text)보다는 문자(Text)에 더 친숙하다. 하나님의 헤드 십(Headship)보다는 헤드폰(Head phone)으로 음악 청취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가 다 ‘영원’을 하나님과 함께 보내기를 원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시간을 하나님과 함께 보내기를 원하는 이는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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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의 문제는 이 세상을 떠나고 난 이후에 생각할 일이고, 이 땅에 사는 동안은 현재의 삶에 거의 모든 관심이 집중된다.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Face)보다는 페이스 북(Facebook)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하나님 말씀(Text)보다는 문자(Text)에 더 친숙하다. 하나님의 헤드 십(Headship)보다는 헤드폰(Head phone)으로 음악 청취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우리의 눈(eye, ‘아이’)은 예수님께 고정되기보다는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더 주목하고 있다. 그리고 말씀을 ‘사색’하기보다는 ‘검색’을 더 좋아한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겐 하나님을 향한 불만이 참 많다. 하나님이 늘 멀게만 느껴진다고, 신앙생활에 재미가 없고 늘 따분한 삶이 연속된다고, 천국이나 영생이 뜬구름처럼 추상적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고 말이다.

희생 없는 기쁨을 원하기 때문이다. 하나님 없는 형식적 신앙 때문이다. 영원을 사모함 없는 현실적 형통 추구 때문이다. 한 마디로, 하나님과 영적인 일에 별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요한복음17:3절은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관한 깊은 지식이 없는 이들이 육적인 복은 물론 영적인 복에도 관심이 많음을 숱하게 본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마치 그랜드 캐년(Grand Canyon)을 구경하는 것과 흡사하다. 나는 미국 서부지역으로 관광을 할 때마다 그랜드 캐년을 방문하곤 한다. 그랜드 캐년 협곡 아래에 펼쳐진 장관을 처음 보는 순간 내 입에선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왔다.

케년 계곡
그랜드 캐년 계곡

그 웅장한 전경이 하도 좋아 몇 년에 한 번씩 계속 방문을 하곤 했는데, 어느 해엔 근처 박물관에서 아이맥스 영화를 처음으로 관람한 적이 있다. 캐년의 깊은 협곡 아래를 탐험하면서 가까이서 보고 즐기는 전경이나 헬기를 타고 하늘 위에서 바라보는 파노라마, 그리고 굽이굽이 흘러가는 강줄기를 인접해서 살고 있는 원주민들의 생생한 생활상을 살펴보는 묘미가 꽤나 짭짤했다. 높은 곳에서 멀찍이 육안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과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해봤다. 그랜드 캐년 협곡을 높은 곳에서 멀찌감치 서서 바라보는 것과 같은 식으로 하나님을 이해하는 이들이 너무도 많다. 하나님에 대한 이해에 관하여는 A. W. 토저의 말보다 더 좋은 표현을 여태 보질 못했다. “영원은 하나님을 다 알 수 있을 만큼, 혹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길지 않을 것이다.”

영원이 어떤 기간인가? 끝이 없는 시간의 무한대가 영원 아니던가? 그런데 그 영원의 길이보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찬양하는 것이 더 길고 무한하다는 말이다. 그렇다. 우리 하나님은 그랜드 캐년의 협곡보다 깊고 또 깊고 오묘하고 또 오묘하신 분이다. 너무 심오해서 인간의 생각으로는 다 알 수 없는 분이다.

히브리어에 ‘안다’는 단어 중에 ‘yadah’라는 동사가 있다.

이것은 지식과 이론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경험적 체험으로 아는 것을 의미한다.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창 4:1)라고 할 때 ‘동침하매’란 히브리어가 ‘yadah’이다. 이는 두 사람만이 아는 깊고 친밀한 앎을 말하는 것이다. 또 이 단어는 ‘행하다’라는 단어와 차이가 없다. 아는 것이 곧 행하는 것이고 행하는 것이 곧 아는 것이다. 다른 말로, 어떤 것을 행하지 않는다면 실은 그것을 모르는 것이란 말이다.

하나님을 제대로 체험한 이는 행함과 변화와 순종으로 열매 맺어야 정상이다.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도 자기 삶에 변화가 없다면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다. <야채극장 베지 테일>(Veggie Tales)의 원작자 필 피셔(Phil Vischer)의 얘기를 소개해보자. 그는 아이디어를 받아 소자본으로 ‘빅 아이디어’라 불리는 만화영화 비디오 제작회사를 설립했다. 그 회사는 5천만 개가 넘는 비디오테이프를 판매해 수억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그러나 단 한 번의 소송사건에 휘말려 모든 것을 잃게 된다. 그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14년 만에 거둔 고생의 열매가 잠깐 반짝했다가 삽시간에 꺼져버렸다. 만화 캐릭터, 노래, 파급 효과, 전 세계 어린이 팬들이 보내준 편지, 그 모든 것이 내 눈앞에서 잠깐 반짝이다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회사는 파산 선고를 했고 그의 꿈은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했다. 그때 그는 설교 한 편을 듣고 절망 가운데 있는 자신의 영혼을 구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꿈 하나를 주시고, 활기차게 펼쳐 나가게 해주시고, 능력도 베푸셔서 이룰 수 있게 해주셨는데, 그 다음에 갑자기 그 꿈이 죽고 없어집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날까요? 당신이 무엇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지, 그 꿈인지 하나님인지 하나님께서 확인하고 싶어 하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이 잘나가다 보면 하나님을 놓쳐버릴 수 있다. 구약성경의 아브라함이 그랬다. 약속의 상속자를 얻지 못해 의심과 불신으로 일관하던 그가 백 세(100) 나이에 기적같이 아들을 얻게 된다. 그의 생애에 그보다 더 기쁘고 행복한 일이 또 있었을까? 그 소중한 아들 이삭에게 푹 빠져 있던 아브라함에게 어느 날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그 아들을 번제(불어 태우는)로 바치라고 명하신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요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는 아브라함이 누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이삭인지 하나님인지 보고자 하신 하나님의 테스트였다. 오늘 나는 썩을 양식과 명예와 업적을 위하여 살고 있는지 아니면 영원한 하나님 나라와 그분의 영광과 의를 위해 살고 있는지 스스로 점검해보자. 오직 하나님을 향한 체험적 지식과 확실한 변화만이 영원을 바라보고 사는 참 하나님의 백성임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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