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메르켈 총리, 프랑스의 사르코지 총리 등 글로벌 리더의 자문을 맡아왔고 [엔트로피] 등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를 저술한 사회사상가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은 최근작 [공감의 시대((The Empathic Civilization)]에서 다윈의 적자생존형 인재 즉 ‘경쟁하는 인간’이 아닌 호모 엠파티쿠스(Homo Empaticus) 즉 ‘공감하는 인간’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인류 앞에 놓인 난제를 풀어나갈 주역이 되리라고 예측했다.
사회적기업가정신(social entrepreneurship)과 사회혁신(social innovation)을 주도해 온 글로벌 사회혁신가들의 네트워크인 아쇼카의 창립자 빌 드레이튼(Bill Drayton) 역시 공감능력(empathy)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공감능력이란 다른 사람의 감정과 생각, 경험 등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공유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공감능력은 빈곤, 질병, 교육격차, 환경오염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로 인해 타인들이 느끼는 고통을 나의 것처럼 느낄 수 있게 만들고, 해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효율적이고 지속가능한 솔루션을 찾기 위해 필요한 열정과 헌신의 원동력이 된다.
최근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스마트워치를 만들어 세상을 놀라게 한 소셜벤처 닷(Dot)의 김주윤 대표가 공감능력을 바탕으로 혁신적인 솔루션을 도출한 좋은 사례이다. 김주윤 대표는 미국 워싱턴대학을 다니면서 두 번의 창업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세번째 창업은 성공적이었지만 과연 이 사업이 본인의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이 일을 하다가 내일 죽더라도 나의 삶에 후회는 없을 것인지 등 사업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을 품게 된다. 그러던 중 아는 동생의 권유로 교회 모임에 나가게 되고, 도서관 봉사활동을 하다가 우연히 시각장애인이 자기 몸집만한 점자 성경책을 읽는 모습을 보게 된다.
점자의 특성상 점자 성경책의 부피는 매우 크다. 예컨대 카톨릭성서공회에서 발간한 성경책은 가로 278cm, 세로 277cm에 6천여페이지에 달하는 크기이다. 그러다 보니 제작비용도 높은데, 개역개정판의 경우 20여권으로 이루어진 점자성경 한 질의 제작비가 2007년 기준으로 30만원이 넘는다고 한다.
도서관 입장에서는 점자 도서의 구매가격과 관리비용이 높다보니 점자로 된 장서 보유 숫자가 적다. 이는 시각장애인 입장에서 점자를 힘들게 배워봤자 읽을만한 컨텐츠가 별로 없으므로 점자를 배울 인센티브가 작아짐을 의미한다.
컴퓨터 속 글을 점자로 바꾸어 주는 점자 디스플레이가 나왔지만, 대당 500만원-600만원에 달해 개인이 구매하기에는 부담스럽다. 이렇다보니 전세계 2억 9천만의 시각장애인 중 95%가 점자문맹이라고 한다.
김대표는 죽마고우인 성기광 공동대표와 함께 시각장애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당 30만원 정도 하는 웨어러블형 스마트워치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황금의 펜타곤, 아시아 소셜벤쳐 경진대회(Asia Social Venture Competition) 등 여러 대회에서 수상하면서 인지도가 높아졌고, KAIST 연구진 등과 연결되어 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
이 과정에서 시각장애인 뮤지션 스티비 원더, 성악가 안드레아 보첼리 등이 자발적으로 제품을 홍보해주었고, 미국의 Times, 영국의 BBC 등에 소개되기도 했다. 미래창조과학부, 중소기업청, 창업진흥원, 창조경제혁신센터, SK텔레콤 등 정부기관 및 기업의 지원도 잇달았다.
시각장애인들은 구매능력이 없기 때문에 이런 사업은 성공할리 없다는 주위의 우려를 비웃듯, 시각장애인들의 부모, 자녀, 친척, 친구 등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기술개발에 매진한 결과 닷은 30개 이상의 특허를 보유하게 되었다. 2019년 7월 현재 13개국과 350억원 규모의 계약을 맺었고, 누적 투자액이 100억원에 이른다.
닷은 2020년 현재 능동형 점자기술을 적용한 점자 정보 시스템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세계 최초의로 지도 및 길안내 서비스 같은 고급 시각정보를 전달 가능한 점자 기반 키오스크를 기반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며, 2022년 카타르월드컵 등 굵직한 해외 이벤트에서도 관련 서비스를 홍보하고자 한다.
이처럼 타인의 '고통을 공감한' 두 사람의 열정과 헌신이 주위의 많은 개인과 기관들의 공감을 낳고, 서로를 격려하고 돕는 가운데 공감대가 확산되어 인적/물적/기술 자원이 투입되고 사회적 문제가 혁신적으로 해결된다. 공감이 공감을 낳으면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모습은 마치 바이러스가 전염되어 큰 세력을 이루어가는 모습과 유사하기도 하다.
성경에서는 이러한 마음을 컴패션(compassion) 즉 긍휼이라 부른다.
미리암-웹스터 영어사전은 컴패션을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하고 이를 줄여주기 위한 열정과 행동이 따르는 것’이라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긍휼은 공감(empathy)과 행동(action), 열정(passion)과 헌신(commitment) 등을 포괄하는 종합적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시편 145편 8절에서 다윗이 “여호와께서는 모든 것을 선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라고 찬양한 것처럼 긍휼은 하나님이 가지신 중요한 속성 중 하나이다. 로마서 12장 5절에서 사도 바울은 “즐거워 하는 자들고 함께 즐거워 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라고 하면서,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야 하는 우리가 다른 이들의 감정을 적극적으로 공감해야 함을 말한다.
또한 야고보서 1-2장은 말씀을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하는 자가 될 것을 권면하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경건함은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고아와 과부를 돌보고 가난한 형제자매에게 양식을 제공하는 것 즉 긍휼한 마음을 바탕으로 약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적극적 행동까지 포함하는 것임을 지적한다.
야고보서 4장 17절에서는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라고 말씀하시고, 야고보서 3장 13절에서는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이라고 하신다.
베드로후서 3장에 따르면 말세의 특징 중 하나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다.
반면 고린도후서 13장에서 말하는 사랑의 속성 중 하나는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는 것 즉 상대방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다. 이로 보아 오늘날의 성도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상대방의 유익을 구하는 사랑이다.
이런 사랑을 믿음 가운데 행하기 위해서는 우선 상대방이 가진 아픔과 고통을 공감하고, 지혜의 온유함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솔루션 즉 지속가능한 행동방안을 도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가능케 하는 열정과 헌신, 그리고 지혜는 누구든지 구하는 자들에게 하늘로부터 공급될 것이다. CMR
(이 글은 2018년 3월 데일리굿뉴스에 기고했던 글을 업데이트한 내용입니다.)
필자 신현상 교수는 서울대학교 경영학 학사와 석사, 일리노이 대학교 경제학 석사와 UCLA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 후 현재 한양대학교 경영대학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양대 임팩트비즈니스연구센터장, 아쇼카 U 체인지리더, 스탠포드 소셜 이노베이션 리뷰(SSIR) 한국어판 편집장을 맡고 있으며 임팩트 측정 및 컨설팅 전문회사인 (주)임팩트리서치랩 대표로 활동 중이다. 출처: 기독경영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