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정원에서 영감을 얻은 작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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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정원에서 영감을 얻은 작가들
  • 박동현 기자
  • 승인 2021.08.05 15: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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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 뜨자마자 마당에 나갔다가 이제야 집 안에 들어왔다. 열 시 넘은 시간이다. 지치고 배도 고파서 들어온 것이지 일이 끝난 건 아니다. 마당 일은 한도 끝도 없다. 집이 교외에 있어 작은 마당을 가꾸고 있는데 꽃나무 몇 그루 심고 나머지 땅은 텃밭을 만들까 하다가 농사에 자신이 없어 잔디를 심었다. 채소를 가꾸는 것보다 잔디가 훨씬 손이 덜 갈 줄 알았다···'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의 부차트 가든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서울=뉴스1) 조성관 작가 = 현직에서 은퇴한 지인 K는 현재 강원도 홍천에 전원주택을 짓는 중이다. 한 달에 절반 정도를 강원도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오래된 계획이다. 이 꿈을 위해 K는 지금 자원봉사로 원예와 조경을 배우고 있다.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소망한다. 마당 있는 집에서 작은 정원을 가꾸며 살아보고 싶다. 현실적으로 서울이나 부산 같은 대도시에서 정원 있는 집에서 살기란 쉽지 않다. 아파트 베란다에 식물을 키우는 것이 정원을 갖고 싶다는 욕망의 반영이다.

도회지에 주거용 집이 있으면서 강가나 산속에 별장(전원주택)을 갖는 것은 꿈같은 일이다. 은퇴 후 아예 도회지 생활을 정리하고 교외로 이사하지 않는다면. 별장과 관련된 우스개가 하나 있다.

'별장을 갖고 있으면 두 번 웃는다. 살 때 웃고, 팔 때 웃는다.'

별장을 관리하는 데 그만큼 시간과 돈이 든다는 말이다. 정원 관리와 잡다한 일을 전담해주는 사람을 쓰지 않으면 집이 금방 볼썽사납게 변한다. 의뢰인의 살 집을 찾아주는 프로그램 '구해줘 홈즈'에 보면 멀쩡한 전원주택이 매물로 많이 나온 것을 보게 된다. 겉보기에는 멋져 보이지만 유지·관리가 힘들다는 메시지가 아닐까. 지인 K가 자원봉사로 원예와 조경을 배우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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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박완서 "마당 일은 한도 끝도 없다"

소설가 박완서(1931~2011)는 경기도 개풍이 고향이다. 개성을 에워싸고 있는 지역이 개풍이다. 여덟 살 때 서울로 와 예순여덟 살 때까지 서울 사람으로 살았다. 그러던 박완서가 60년만에 경기도 구리의 산골짜기 마을로 이사 갔다. 표면적으로는 그 산골 마을이 고향의 산과 들을 닮았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내면적으로는 참척의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무의식이 작용했으리라.

전원주택에 살면 누구나 크든 작든 마당과 정원(이나 텃밭)을 가꾼다. 글 쓰는 사람이 마당을 가꾸게 되면 어느 순간부터 글에 식물 이야기가 풍성해진다. 마당에서 식물을 키우는 일은 힘든 만큼 다양한 이야기 소재를 제공한다. 박완서의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 보면 '반농부' 박완서의 모습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마당에 나갔다가 이제야 집 안에 들어왔다. 열 시 넘은 시간이다. 지치고 배도 고파서 들어온 것이지 일이 끝난 건 아니다. 마당 일은 한도 끝도 없다. 집이 교외에 있어 작은 마당을 가꾸고 있는데 꽃나무 몇 그루 심고 나머지 땅은 텃밭을 만들까 하다가 농사에 자신이 없어 잔디를 심었다. 채소를 가꾸는 것보다 잔디가 훨씬 손이 덜 갈 줄 알았다···'

'잔디밭에 등을 대고 누우면 부드럽고 편안하고 흙 속 저 깊은 곳에서 뭔가가 꼼지락대는 것 같은 탄력이 느껴진다. 살아 있는 것들만이 낼 수 있는 이런 기척은 흙에서 오는 걸까, 씨앗들로부터 오는 것일까. 아니 둘 다일 것 같다. ···씨를 품은 흙의 기척은 부드럽고 따숩다. 내 몸이 그 안으로 스밀 생각을 하면 죽음조차 무섭지 않아진다.'

박완서는 팔십 년을 살았다. 그가 노년에 쓴 산문을 읽다 보면 마당 가꾸는 이야기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느낌을 준다. 산골 마을로 이사가지 않았다면 그의 산문이 얼마나 무미건조하고 퍽퍽했을까. 몸빼 바지를 입고 손톱에 새카맣게 흙이 낀 손으로 잡초를 뽑는 박완서를 상상해본다. 시골 촌부로 보낸 인생의 마지막 열두 해는 작가에게 최고의 선택이었다.

정원에서 집 '카사 로사'를 바라보고 있는 헤르만 헤세와 니논 돌빈 사진. 조성관 작가 제공

 

 

 

 

 

 

헤르만 헤세의 몬타뇰라 정원

정원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이가 헤르만 헤세(1877~1962)다. 작가는 세 번 결혼했다. 1931년 쉰넷의 헤세는 서른하나의 예술사가 니논 돌빈과 결혼한다. 베를린대학 시절부터 열렬한 '헤세 팔로워'였던 돌빈은 지적이면서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새로운 사랑을 만나면 둘만의 추억을 쌓을 새로운 공간이 필요해진다.

스위스 남부 티치노주의 작은 마을 몬타뇰라. 이탈리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루가노 호수가 발아래로 보이는 마을. 취리히의 재력가 친구가 몬타뇰라에 있는 자신의 저택 '카사 로사'를 헤세에게 무상으로 빌려주었다. 헤세는 집 앞에 정원을 꾸몄고 꽃과 포도나무를 심었다.

돌빈은 헤세의 진정한 뮤즈(Muse)였다. 두 사람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완벽하게 합일(合一)이 되는 커플이었다. 헤세의 하루 일과는 크게 세 가지였다. 글 쓰고 정원 가꾸고, 정원에 나와 그림을 그리는 일. 영감을 주는 아름다운 여인이 곁에 있고 문을 열고 나가면 꽃 피고 포도가 주렁주렁 달린 정원이 펼쳐진다. 작가에게는 지상 최고의 환경이다.

몬타뇰라에 살면서 헤세는 '싯다르타' '유리알 유희' '동방순례' 같은 작품을 써냈다. 알려진 대로 '유리알 유희'로 그는 1946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부부는 죽을 때까지 정원이 내려다보이는 '카사 로사'에 살았다.

타샤가 맨발로 정원 일을 하는 모습 / 사진출처 = 타샤 튜더의 정원

 

 

 

 

 

 

타샤의 버몬트 정원, 비타의 시싱허스트 캐슬 정원

동화작가 겸 삽화가 타샤 튜더(1915~2008)의 생애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타샤 튜더'를 본 일이 있다. 타샤 튜더의 생애는 미국 뉴잉글랜드 자연에 대한 찬미다. '타샤 튜더'는 자연의 시간에 맞춰 자급자족하며 천천히 단순하게 살아가는 삶에 대한 찬가다. 마른 멸치처럼 허리가 굽은 타샤는 눈을 감는 순간까지 정원 일을 하고 그림을 그렸다.

타샤의 아버지는 수학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었고, 어머니는 유명한 초상화가였다. 아버지는 아인슈타인과 수학 공식을 벽에 적어놓고 토론을 벌인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보스턴 사교계에 나가는 걸 좋아했지만 타샤는 혼자 있는 걸 좋아했다. 어머니는 타샤가 그림에 소질이 있는 것을 발견하곤 '사진을 보고 그림을 그리지 말라'고 말하곤 했다. 어려서부터 시골 생활을 좋아한 타샤는 농사를 지으며 살기를 원했고, 실제로 열여섯 살에 농사꾼이 되었다. 서른 살에 뉴햄프셔의 농장으로 이사했고 다시 버몬트의 숲속으로 들어가 마지막 시간을 보냈다.

타샤는 30년에 걸쳐 정원을 완성했다. 정원의 가득 채운 여러 가지 꽃 중에서 작약을 가장 좋아했다. 정원 가꾸기는 인간에게 참을성을 가르쳐준다, 정원을 가꾸는 일은 여유를 가지고 철학자가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타샤는 말한다. 타샤는 정원에서 언제나 맨발로 일을 했다. 자갈이 많은 흙길에서도 맨발로 걸어 다녔다. 흙의 기운이 발바닥을 통해 전신에 퍼지는 느낌을 소중하게 여겼다. 아들 부부가 관리하는 타샤의 버몬트 정원은 버몬트의 명소로 유명하다.

타샤처럼 정원을 가꾼 작가가 비타 색빌 웨스트(1892~1962)다. 시인, 소설가, 저널리스트 외에 그에겐 '정원 디자이너'라는 타이틀이 하나 더 붙는다. 원예사나 조경사가 아닌 '정원 디자이너'라는 표현에 주목하자. 영국 켄트 지방의 '시싱허스트 캐슬 가든 '(Sissinghurst Castle Garden)이 시인이 정성을 기울인 정원이다.

물론 그는 원예나 조경을 배워 본 일이 없는 사람이다. 1930년 낡은 탑이 있는 버려진 땅을 사들여 작가의 철학과 감성을 입혀 자기식대로 정원으로 조성했다. 이 과정에 외교관 남편 해럴드 니콜슨도 일정한 역할을 했다. 남편의 임지(任地)에서 접한 페르시아 정원 미학을 그는 자신의 정원에 과감하게 접목시켰다.

정형적인 패턴을 선호한 남편의 취향과 자유로운 기하학적 패턴을 즐긴 아내의 기호가 적절하게 배합되었다. 구역별로 같은 색의 꽃나무를 심어 화이트 가든, 장미 가든, 오차드 가든 등을 꾸몄다.

'시싱허스트 캐슬 가든' 전경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비타는 런던에서 발행되는 신문 '옵저버'지에 '당신의 정원에서'라는 칼럼을 장기 연재했다. 박완서의 마당 가꾸기처럼 정원을 꾸미면서 느낀 소소한 일들을 일지(日誌) 형태로 기록한 것이다. 죽기 1년 전까지 연재한 이 연재물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덩달아 '시싱허스트 캐슬'이 유명세를 탔다. '시싱허스트 캐슬 가든'은 영국인이 가장 방문하고 싶어 하는 정원 상위에 오른다.

'어록 제조기'인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정원에 대해서도 어록을 남겼다. 
'정원 가꾸기는 두말할 나위 없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일이다.'

삼성전자 고위 임원인 지인에게서 은퇴 후의 꿈에 대해 듣고 격하게 공감한 적이 있다. 식물 키우기를 좋아하는 그는 영국에 가서 제대로 원예(gardening)를 배울 생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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