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공화국이 어디에 있는 나라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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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공화국이 어디에 있는 나라인가 ?
  • 목장드림뉴스 기자
  • 승인 2022.08.01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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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에는 무슬림 복장 개혁을 시행하여 여성들의 복장을 해방시키고, 과거에 금지되었던 여성의 교육권을 보장해 남녀평등 교육을 시행하였으며, 이슬람력을 폐지하여 유럽식 그레고리력으로 대체했다. 1926년에는 민법을 개정해 일부다처제를 금지하고 일부일처제를 확립하였으며, 1928년에 튀르키예어의 아랍 문자 표기법을 폐기하고 로마자 표기법으로 변경하였다. 1930년에는 여성에게도 선거권을 부여했다.
소피아 성당(현재는 무슬림 사원) 내부 벽, 작은 순금조각 모자이크 성모와 아기예수 좌우는 동방박사

터키 공화국의 역사는 1923년 터키 독립전쟁을 승리하면서 ‘케말파샤의 지도로 터키 공화국 건국부터 지금까지의 역사가 이어지고 있고, 이 부분을 터키의 현대사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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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독립 전쟁

제1차 세계 대전 직후 연합군이 이스탄불(중세 동로마/ 콘스탄티노폴리스 )과 이즈미르를 점령하면서 터키의 민족 운동이 촉발되었다. 갈리폴리 전투에서 공훈을 세운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장군의 주도로 세브르 조약 규정을 철회시키기 위한 터키 독립 전쟁이 일어났다.

1922년 9월 18일, 점령군은 퇴각하였으며, 새로운 터키가 건국되었다. 11월 1일에 열린 의회는 공식적으로 술탄(이슬람 세계에서 세습 군주제로 통치하는 국가 또는 지역의 군주를 부르는 말)를 폐지하여, 623년간 이어진 오스만 제국의 지배가 종식되었다.

1923년 7월 24일 로잔 조약에서 신생 터키 공화국은 오스만 제국의 후계 국가로서 그 주권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으며, 1923년 10월 29일에 새 수도 앙카라에서 터키 공화국이 정식으로 건국을 선포하였다.

케말 아타튀르크.

무스타파 케말은 터키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으며, 옛 오스만의 잔재를 털어내고 새로운 세속 공화국의 건설을 목적으로 여러 급진적인 개혁을 추진하였다. 1924년에 그는 서기 632년 이래 1300년 동안 이어져 오던 칼리프제를 폐지하였고, 터키 공화국의 기본 정신인 세속주의를 법으로 제정했다.

1925년에는 무슬림 복장 개혁을 시행하여 여성들의 복장을 해방시키고, 과거에 금지되었던 여성의 교육권을 보장해 남녀평등 교육을 시행하였으며, 이슬람력을 폐지하여 유럽식 그레고리력으로 대체했다.

1926년에는 민법을 개정해 일부다처제를 금지하고 일부일처제를 확립하였으며, 1928년에 튀르키예어의 아랍 문자 표기법을 폐기하고 로마자 표기법으로 변경하였다. 1930년에는 여성에게도 선거권을 부여했다.

'가족명에 관한 법'에 따라, 1934년에 터키 의회는 무스타파 케말에게 '아타튀르크'(아버지 터키인, 즉 '국부')라는 명예 성명을 부여하였다.

현재의 이스탄불 아가 소피아 성당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때인 532년에 5년 걸려 지은 세 번째 건물,건축 한지 1485년이 지났지만, 현재도 보존상태가 매우 좋다.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중 대부분 터키는 중립을 취하였으나, 1945년 2월 23일에 의례적인 의미로 연합군측에 참전하였으며, 1945년 유엔의 창립 회원국이 되었다. 소비에트 연방이 터키 해협에 군사 기지를 요구하는 가운데 옆 나라 그리스에서는 공산주의자와 내전을 벌이면서 위기 상황이 조성되었다.

1947년 미국은 트루먼 독트린을 선언하게 된다. 이 독트린에서 미국은 터키와 그리스의 안보를 보장하기 위해 개입할 수 있음을 밝혔으며, 그 결과 미국이 대규모로 군사 및 경제 원조를 제공하게 되었다.

터키는 한국 전쟁에서 유엔군으로 참전하였으며, 1952년에는 북대서양 조약기구에 가입하여 지중해로 진출하려는 소련의 팽창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하였다. 이후 키프로스에서 십여 년간 내전이 벌어졌고, 1974년 7월에 그리스인들의 군사 정변으로 마카리오스 3세 대통령이 실각하고 니코스 삼프손이 독재 정권을 세웠다.

터키는 1974년에 키프로스 공화국을 침공하였다. 9년 뒤에 북키프로스 튀르크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이 나라는 오직 터키의 승인만 받은 나라이다.

그랜드 바자르 시장 입구 1461년이 선명하다. 건축 561년이 된다 

1945년에 일당제 시대가 종식된 이후, 다당제 시대에는 수십여 년간 긴장을 초래하였으며, 1960년대에 1980년대 사이에 정치적 불안 상태가 계속되면서 1960년, 1971년, 1980년에 군사 정변이 일어났으며, 1997년에는 1997년 터키 군부 협정 시기이기도 하였다. 한편 1980년대부터 터키 경제가 자유화되어 이 나라의 경관이 바뀌게 되며, 이후 수십 년 동안 높은 성장과 위기가 잇따랐다.

한편 터키는 역사적인 유적이 많아 광관객이 많으며, 한국인도 코로나 이전에는 년 간 몇 십만 명이 찾을 정도였다. 이스탄불의 500여 년 된 미로같은 대규모 재래시장에는 한국어를 하는 상인이 많으며, 그들은 한국을 형제국이라고 한국어로 말한다. 한국인에게 친절한 편이다.

그랜드 바자르 시장 내부, 시장 건축한지 561년이 지났다 

이스탄불 육지 쪽에는 아직도 동로마(콘스탄티노폴리스) 시대의 높은 (11m) 3중 성벽과 해자(인공 강) 유적이 남아있고, 보존이 잘된 곳도 있다. 동로마 콘스탄티노폴리스 정복하여 역사에서 사라지게 한 오스만 제국의 장군은 젊은슐탄 메흐메트 2세였다. 1453년 그때도 소피아성당(지금은 이슬람 사원)은 있었다.

터키는 2022년 대외적인 국호도 '터키 공화국'에서 '튀르키예 공화국'으로 변경되었으며, 동년 6월 1일 유엔에서 이를 승인받았다. 영어명을 그대로 옮긴 한국어 국명 '터키'에 대해서도 2022년 6월 3일 터키 외무부가 대한민국 외교부 측에 '튀르키예 공화국'을 사용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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