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거인 김건철 장로 북한 가까운 곳에 잠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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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거인 김건철 장로 북한 가까운 곳에 잠들다'
  • 박동현
  • 승인 2022.10.27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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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철 장로는 근면함으로 큰 부를 이루었으나 자신을 위해 검소하고, 남에게 겸손하여 선거를 몇번 치뤘으나 적이 없었다. 한국전쟁 직후 '무궁화 유지'에 입사 판매사원으로 시작, 회사가 커지면서 김 장로도 돈을 벌게 되고, 수년 후 보유했던 회사주식을 매각, 땅을 매입하여 단독 주택을 지어 파는 사업으로 부를 구축하고,(기자가 직접 들었음)
고 김건철 장로 동숭교회서 환송예배

김건철 장로(남선교회전국연합회 55대 회장, 동숭교회 원로)가 지난 10월 23일 별세했다. 향년 만93세. 26일 동숭교회에서 천국환송예배 후 경기도 파주시 동화경모공원(평남출신묘역)에 안장됐다. 김건철 장로는 남선교회전국연합회장을 역임하면서 평신도 사역을 위해 헌신했다. 김 장로는 국민훈장 목련장과 동백장, 한경직 목사 기념상, 몽골정부 북극성훈장 등을 수상하였고, 교단 발전과 사회에도 많은 공헌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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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오래 전에 동화경모공원에 먼저 잠든 부친 김능백 목사가 시무했던 충남 예산교회 뜰(현재는 충남노회회관뜰)에 세워진 공로비에는 교인들이 '김 목사님은 악의악식(惡衣惡食/좋지 못한 거친 옷과 맛없는 음식(飮食)」이라는 뜻으로, 변변치 못한 의식(衣食)을 이르는 말) 하시고' 표현이 있다.(기자 방문당시 묘비촬영 보존)

김능백 목사는 6.25 한국전쟁 때 북한에서 큰아들과 단 둘이 잠시 전쟁을 피해 남한으로 왔지만,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북한이 눈앞에 보이는 동화경모공원 언덕에 잠들었다. 바로 옆에 아들 김건철 장로가 눕고 그옆에는 부인 엄영선 권사가 누울 자리가 준비 되어있었다.

먼저 잠든 부친 고 김능백 목사 옆에 김건철 장로 안장,작업인부를 보면 간격을 알 수 있다.

김건철 장로는 어린이 찬송가 '예수사랑 하심은' 을 즐겨 부르셨고, 대중가요는 '나의누이'를 잘 불렀다. 김장로는 북한에 살아 있으나 만날수 없는 친누이에게 미국국적을 가진 지인을 통해 생활비를 보내주곤 했다.

김건철 장로는 근면함으로 큰 부를 이루었으나 자신을 위해 검소하고, 남에게 겸손하여 선거를 몇번 치뤘으나 적이 없었다. 한국전쟁 직 후 '무궁화 유지'에 입사하여 판매사원으로 시작, 회사가 커지면서 김 장로도 돈을 벌게 되고, 수년 후 퇴사하여 보유했던 회사주식을 매각, 땅을 매입하여 단독주택을 지어파는 사업으로 부를 구축 하기 시작했다(직접들었음)

                    아래 동영상은 동숭교회 환송 예식부터 동화경모공원 안장까지.. 

김 장로는 인생후반에는 회사(강남00빌딩)에 전담직원을 두고 주식투자를 안정적으로 하기도 했다. 선교적 큰 일에는 수십억원을 헌금하기도 하고, 서울노회장로회 산행 같은 작은 일에는 형편에 알맞게 후원을 했다. 기자가 과거 한국장로신문 취재부장으로 일하게 된 것도 김건철 장로가 스카웃 해서 였다.

김 장로는 사무실이 있는 강남의 00빌딩으로 가끔 불러 식사하면서 교계정치(누가 이번에 장로회장이 유력하냐? 또는 교단 부총회장는?) 등에 궁금한 것이 많았다. 아는 대로 알려 주었었다. 기자는 김 장로(님)의 은혜를 많이 입은 이유로 동숭교회 환송예배에 이어 파주 동화경모공원 장지까지 가게되었다.

바로 앞 임진강 건너 보이는 산이 북한이다.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지만, 고향을 바라보며 이곳에 잠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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