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거대한 생태계였다. 상품 포스팅(등록), 주문, 결제, 배송 등으로 이어지는 서플라이 체인(공급사슬)이 만든 전자상거래 환경 말이다. 알리바바는 단지 플랫폼만 제공했을 뿐이다. 위력은 놀랍다. 광군제(光棍節·솔로데이) 행사 당일(11일)에만 912억 위안(약 16조5000억원)어치를 팔아치웠다. 행사 참가 기업은 약 4만 개에 달한다고 이 회사는 밝히고 있다. 이들이 만든 3만 개 브랜드, 약 600만 종의 상품이 ‘알리바바 생태계’에서 거래됐다. 월마트 품목보다 1.5배 정도 많은 수준이다. 40만 대의 트럭, 비행기 200대가 이들을 실어 날랐다.
생태계는 이제 해외로 뻗는다. 약 5000개 해외 브랜드가 이번 행사에 참여했다. 물론 한국도 포함된다. 지난 토요일 항저우(杭州)로 가는 아시아나 여객기 화물칸에는 큰 뭉치의 포장 화물이 실렸다. 립스틱·매니큐어·머드팩 등 5t 분량의 화장품이었다. 역시 ‘알리바바 생태계’ 속 제품이다. “광군제 행사 때 재고 쇼티지(부족)가 발생한 분량이다.
배송 날짜를 지켜야 했기에 비싸도 어쩔 수 없이 항공 수송을 해야 했다.” 물류업체인 윈윈로지스틱 김근철 사장의 설명이다. 이 회사는 지난 10월 중순 이후 40개 컨테이너 분량의 ‘광군제 특수 상품’을 항저우로 보냈다. 대부분 화장품으로 약 100억원 규모였다. 주문량을 맞추느라 밤샘 작업을 해야 했단다. 직원 25명의 중소 물류업체에는 ‘대박’이다. ‘알리바바 생태계’는 그렇게 강력한 흡인력으로 한국의 한 중소 물류업체를 끌어들이고 있다.
제조업으로 일어선 경제다. 13억 인구가 분출하는 ‘노동력(Labor force)’은 중국을 G2의 나라로 만들었다.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이제 그 노동력은 ‘구매력(Purchasing power)’으로 변하고 있다. ‘지난 20년 중국 노동력이 세계 경제 판도를 바꿨다면 앞으로 20년은 그들의 구매력이 판도를 결정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니컬러스 라디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연구원). 소비 중심의 성장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중국 정부의 ‘신창타이(新常態·뉴노멀)’가 지향하는 목표다.
우리와 직결된 문제다. 그동안 한·중 경협은 제조업을 중심으로 짜여왔다. 국내에서 부품을 만들어 중국에서 조립해 미국에 수출하는 구조다. 그러나 임금이 오르고 중국의 중간재 기술 수준이 높아지면서 그 패러다임은 깨지고 있다. 그동안 경쟁을 유지해왔던 스마트폰, 심지어 자동차도 밀리는 실정이다. 노동력이 구매력으로 변하고 있는 중국 경제의 속성, 산업 내 움직임을 정확히 읽지 못한 때문이다. 그들은 지금 기업별 생태계, 업종별 클러스터를 중심으로 뭉치고 있다. 자기들만의 서플라이 체인을 만들며 장벽을 쌓고 있다. ‘알리바바 생태계’는 그 한 예일 뿐이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필요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중국 내수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높여 ‘구매력’ 시대에 맞는 한·중 비즈니스의 새 패러다임을 짜보자는 취지다. 중국 생태계로의 진입 통로를 넓히는 길이기도 하다. 그러나 FTA 비준안은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국회는 ‘이달 안에 통과되지 않는다면 하루 40억원의 수출 손실을 볼 것’이라는 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중국 경제가 신창타이로 내달리고 있는데도 우리 정치는 구태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비난을 듣는 이유다. 한·중 FTA 비준안이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지금 이 시간에도 ‘알리바바 생태계’는 우리를 외면한 채 더 풍성하게 자라고 있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