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생활고로 인한 사망 가능성 조사
"상당수 탈북자 여전히 적응 어려울 것"
"적극 찾아가서 지원하는 시스템 절실"
"한국교회, 물심양면에서 그 역할 커"
통장 잔고 0원, 쌀은 없고 고춧가루만 봉지에...
굶주림 끝에 숨진 것으로 추정돼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는 40대의 한 탈북 여성과 그녀의 여섯살 된 아들. 위 내용은 이들의 집에서 발견됐다고 언론에 보도된 것들이다. 굶주림을 피해 한국으로 왔는데 굶주림 때문에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국내 '탈북자 인권'을 돌아보게 하고 있다.
서울 관악경찰서는 10년 전 입국한 이 탈북 여성이 관악구 봉천동의 한 아파트에서 아들과 함께 숨진채 발견됐다고 12일 밝혔다. 경찰은 이들 모자가 생활고로 인해 아사(餓死)했을 가능성도 조사하고 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들 모자는 보증금 547만에 월세 9만 원짜리 13평 임대아파트에 거주해 왔다. 그러나 수개월 동안 월세를 내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고, 모자의 시신을 신고한 아파트 관리인도 수도요금 미납으로 단수가 됐지만 아무런 소식이 없자 이들이 사는 집을 찾았다고 한다.
입국 당시 이 여성은 우리 정부가 적응 교육을 마친 탈북자들에게 지원하는 돈을 약 9개월 동안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엔 중국 동포인 남편이 생활비를 벌었다. 그러나 남편과 이혼한 이 여성은 아들까지 병에 걸리면서 극심한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보인다.
국내로 들어온 탈북자들의 수는 3만2천여 명 정도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 인권 운동가인 자유북한방송 김성민 대표에 따르면, 국내에 있는 북한 인권 관련 단체는 약 30개, 그 외 탈북자들의 친목 단체는 대략 70개다.
김 대표는 "이들 단체 회원들과 직장에서 자리를 잡은 탈북자들을 뺀 나머지 약 2만5천 명은 전체 탈북자 네트워크에 포함돼 있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즉, 상당수의 탈북자들이 국내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통일부를 비롯해 남북하나재단 등 탈북자 지원을 위한 단체는 국내에 무수히 많다고 김 대표는 말했다. 문제는 이번 봉천동 모자 사건에서 보듯, 이런 단체들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것이라고.
김 대표는 "북한 인권을 그렇게 말했으면서도 정작 옆집에서 같은 탈북자가 죽어가는 것도 몰랐으니 우선은 우리 같은 탈북자들의 책임이 크다"며 "그러나 한편으론 마치 거미줄처럼 탈북자 지원 단체들이 있지만, 이들이 정말 탈북자들의 인권에 관심이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탈북자로 목회자가 된 강철호 목사(새터교회)도 "우리나라에 탈북자들을 지원하는 단체들은 많다. 지원 액수도 결코 적지 않다"며 "그런데 이 돈이 정작 도움이 필요한 탈북자들에겐 잘 가지 않는다. 생색내기식으로 지원이 이뤄지는 탓이다. 이젠 적극적으로 찾아가서 돕는 시스템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성민 대표는 특히 한국교회의 역할을 주문했다. 그에 따르면 많은 탈북자들이 한국에 들어온 후 교회를 의지했다. 교회가 그들을 안아주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하지 못한 많은 일들을 그 동안 교회가 해 왔다고 김 대표는 말했다.
그는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교회에 가보면 탈북자들이 없는 곳이 없다. 그 정도로 지금까지 교회는 탈북자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며 "특히 교회가 필요한 것은, 물질적 지원 때문만이 아니라 탈북자들이 낯선 땅에 적응하며 겪고 있는 정신적 어려움을 그들이 치유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이번 기회에 우리 사회가, 어쩌면 다가올 통일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지도 모를 탈북자들의 인권에 좀 더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