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발 든 탈북 영웅’ 지성호 당선자 “독재 북한과 자유 대한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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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발 든 탈북 영웅’ 지성호 당선자 “독재 북한과 자유 대한의 차이”
  • 박동현 기자/송경호 기자 
  • 승인 2020.04.18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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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와 인터뷰서 소감과 각오 밝혀… 북송방지법 제정 추진. 미래한국당 비례대표로 국회 입성, 비고위층 출신 최초
역사의 현장서 기적 봤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셔서 가능 했다.
북한에서 수많은 이들이 굶주리던 1994년 당시 14살이던 지 당선자는, 생존을 위해 석탄을 훔치려고 열차에 올랐다가 불의의 사고로 왼쪽 다리와 손가락을 잃었다. 마취제 없이 뼈를 잘라내는 비인간적 환경 속에 고통의 나날을 보냈다.
▲‘목발의 탈북자’ 지성호 씨. 그는 자신의 당선 소식을 통해 북한 주민들이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되었으면 좋겠고 희망을 주었으면 한다며 “죽지 말고 살아서 다시 만나자”고 했다. ⓒ크리스천투데이 DB
▲지난 2018년 트럼프 대통령의 연두교(새해 첫 국정연설)에서 대통령의 소개로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목발을 들어 보이고 있는 지성호 씨. ⓒ백악관 유튜브 영상 캡쳐

지난 2018년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백악관 연두교(새해 첫 국정연설)에서, 목발을 치켜든 한 탈북자가 참석자들에게서 한참 동안 격려의 박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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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당시 어린 시절 굶주림, 열차 사고로 팔과 다리를 잃었던 것, 탈북 과정과 이후 북한 인권을 위해 살아온 삶을 눈물의 절규와 함께 쏟아냈다. 이번 총선에서 국회에 입성한 지성호 당선자 이야기다.

그는 이번 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의 비례정당인 미래한국당의 12번째 비례대표로 나서 당선됐다. 북한의 고위층 출신이 아닌, 처절한 밑바닥의 ‘꽃제비’ 출신이었기에 큰 화제를 모았다.

북한에서 수많은 이들이 굶주리던 1994년 당시 14살이던 지 당선자는, 생존을 위해 석탄을 훔치려고 열차에 올랐다가 불의의 사고로 왼쪽 다리와 손가락을 잃었다. 마취제 없이 뼈를 잘라내는 비인간적 환경 속에 고통의 나날을 보냈다.

2000년 목발을 짚고 중국으로 건너가 쌀을 구하다가 붙잡혀 심한 고문을 당하고 2006년 남동생과 함께 탈북했다. 그해 7월 긴 여정 끝에 대한민국에 도착하자마자 들려온 소식은, 뒤이어 탈출을 시도하던 아버지가 보위부에 잡혀 고문을 당하다 숨졌다는 비보였다.

가족의 비극과 장애에도 포기하지 않고 당당히 다시 걷고자 했던 지 당선자는 “자유 대한민국에서 북한의 장애인과 인권의 대변자가 되어야 한다는 책임을 느꼈다”며 탈북 친구들과 함께 북한인권단체 나우(NAUH)를 설립했다. 이후 100명이 넘는 어린아이, 장애인, 여성들의 탈북을 도왔다.

특권계층 아닌 ‘꽃제비’가 당선돼… 북한서 상상 못할 일, 아버지 생각이 제일 먼저 나… 하늘에서 어떤 기분이실까 탈북민 북송 방지 법안과 정착 문제에도 관심 가져 달라, 복음통일에 모든 초점… 탈북자들은 ‘신이 보낸 사람들’

지 당선자는 선거 직후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역사의 현장에서 기적을 보았다”며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셨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에서는 있을 수도 없고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며 “특권계층도 아닌 꽃제비로 살았던 사람이 국회의원이 됐다. 독재국가 북한과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차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선이 되었을 때 아버지 생각이 제일 많이 났다”며 “팔 다리 다 잘리고, 마취제 없이 수술을 받고, 썩어가는 다리를 안고 눈물 흘릴 때 아버지가 함께해 주셨다. 하늘에서 내려다 보시며 어떤 기분일까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당선증을 펼처 보이는 지성호 당선자 

자신이 국회의원이 되었다는 사실이 북한 사회에 큰 충격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북한 주민이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되었으면 좋겠고 희망을 주었으면 한다”며 “죽지 말고 살아서 다시 만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탈북 국회의원으로서 할 일이 많다”는 지 당선자는, 북한인권재단을 만들고 탈북민 북송을 방지하는 법안을 만들겠다고 했다. “탈북민의 정착 문제도 중요하다”며 “경제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토대도 만들어주고 싶다”고 했다.

종교의 자유 역시 앞장서서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복음으로 평화통일이 이뤄지는 것에 모든 초점을 맞추겠다”고 했다.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통해 많은 나라에 북한인권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도 했다.

한국교회를 향해선 “3만 명의 탈북자들은 ‘신이 보낸 사람들’이다. 북한에 대한민국 사회를 알리고 복음의 통로로 사용되는 가장 확실한 선교사들이 될 수 있다”며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어도 자녀처럼 챙겨주고 취업도 도와 달라. 한국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관심 가져 달라”고 요청했다. 다음은 지 당선자와의 일문일답.

 

-치열한 과정을 거쳐 한국에 정착하고 국회의원이 되셨다. 소감이 어떤가.

“역사의 현장에서 기적을 보았다. 정말 나 자신이 이런 일도 해낼 수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셨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실감했다. 저는 과거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았다. 인격체로 인정해주는 사람이 없는 세상에서 살았다. 북한 당국도 저를 매질하고 고문했다. 저를 인격체로 느끼게 해준 곳이 대한민국이다.

의족과 의수를 하고 세상을 다시 걷게 되고 장애인에 대한 복지를 받으며, 나도 존중받을 수 있는 대상이고 심지어 우대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놀라운 것은 국회의원이 되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표로 보내주신 사랑과 응원은 저처럼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일하라는 목소리다.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다.”

-당선되었을 때 누가 가장 먼저 생각이 났나.

“아버지가 생각이 제일 많이 났다. 죽어도 12번 죽었을 저인데 살려주셔서, 팔 다리 다 잘리고, 마취제 없이 수술을 받고, 썩어가는 다리를 안고 눈물 흘릴 때도 아버지께서 함께해 주셨다. 제가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되었는데, 아버지는 북한 땅에서 잡혀 고문으로 돌아가셨다. 매 맞고 사망하기까지 얼마나 힘드셨을까. 하늘에서 내려다보면서 어떤 기분이실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북한 주민들을 향한 마음도 특별했을 것 같다.

“이 사실(탈북민의 당선)을 알고 나서 얼마나 기뻐할까, 북한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생각했다. 북한에서는 있을 수도 없고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특권계층도 아니고 금수저도 아닌, 정말 북한에서 꽃제비로서 삶을 살았는데, 심지어 장애인이 국회의원이 됐다는 것은 독재국가 북한과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차이를 이야기하는 것 같다.

북한은 나름대로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선거에 참여하지 않으면 정치범 수용소에 가고, 입후보자도 당국이 지정해 준다. 꼭 찍어야 하는 사람이 있고, 선거 결과가 99% 이상으로 나와야 하는 곳이 북한이다. 국민들은 노예이자 거수기 노릇을 하는 신세다.

평양 시내 한 번 못 가본 꽃제비가 국회의원이 되었다는 사실이 북한사회에 큰 충격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 북한 주민이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대한민국이 얼마나 좋은지를 다시 한 번 깨달았으면 좋겠다.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하지 않겠나. 우리 자손들은 지성호처럼 살아야하지 않겠나’는 희망을 북한 주민에게 주길 원한다. 부디 꼭 죽지 말고 살아서 다시 만나기를 원한다.”

-탈북자 출신 국회의원으로서 어떤 일들을 해나갈 계획인가.

“해야 할 일이 많다. 첫째로는 북한인권법에 북한인권재단을 만들 수 있는 조항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그것을 정상화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또한 북한으로 북송되는 탈북민들이 있다. 탈북민 북송을 방지하는 포괄적인 법안을 만들어, 해상에서 귀순을 요청하는 사람들까지도 수용할 수 있도록 폭을 넓혀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탈북민의 정착 문제다. 취업 문제도 어려움이 큰 부분이다. 농어촌공사 등과 협력해서 탈북민들이 농촌과 어촌에서도 정착하고, 본인들의 취향에 맞게 경제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토대도 만들어주고 싶다.

국제사회와의 협력도 계속 해나갈 것이다. 북한인권연맹을 만들어 전 세계 국회의원들과 활동하고, 더 많은 나라에 북한인권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북한의 종교의 자유에 대한 관심도 클 것 같다.

“제가 가장 앞장서서 해결해야 할 문제다. 저는 정치인이기 전에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이다. 북한 땅에 복음이 들어가 복음으로 평화통일이 이뤄지는 그날이 오는 것에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다. 때로는 힘이 부족할 수 있다. 저는 학연도 지연도 없다. 대한민국의 신앙인들이 저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셨으면 한다.”

-한국교회를 향해 요청하고 싶은 점이 있나.

“준비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북한을 위해 기도도 많이 해주고 계신데, 탈북자들 중에서도 목회자들이 배출되어야 한다. 많은 교회에서도 탈북민의 복음화를 위해 애써주고 계시다. 감사하다.

통일이 되면 탈북민이 앞장서서 북한에 교회를 만들 수 있다. 탈북민들이 한국에서 문화의 차이로 어려움을 겪는 것처럼, 우리가 북한에 올라가면 마찬가지다. 북한은 김일성이 신이고 주체사상 아래에 있기에 쉽지 않다.

한국에 먼저 3만 명의 탈북자를 보내주셨는데 그들을 품지 못하면 북한을 품을 수 없다. 비록 탈북민들이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어도, 자녀처럼 챙겨주시고 취업도 도와 달라. 그들은 지금도 북한과 통화도 할 수 있다.

대한민국 사회를 알리고 복음의 통로로 사용되는, 가장 확실한 선교사들이 될 수 있다. 앞으로 북한 땅에 교회를 세려면 지금 사람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 이들은 신이 보내주신 사람들이다. 이들이 한국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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