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대학이 어디일까? 이 질문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하버드대(Harvard University)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버드 대학교는 1636년에 매사추세츠 식민지 일반의회가 설립한 미국 최초의 대학이다. 처음에는 ‘새로운 대학’(New College) 또는 ‘새 도시 대학’(The college at New Town)으로 불렸으나, 3년 뒤에 ‘하버드 칼리지’(Harvard College)라는 이름으로 명명했다.
젊은 청교도 성직자 존 하버드(John Harvard)의 성을 따서 지은 것이다. 그는 유언을 남겨서 4백여 권의 책과 재산의 절반인 현금 779파운드를 학교에 기부하였다. 훗날에 여러 학과와 전문대학원들이 통합되면서 ‘하버드 대학교’(Harvard University)가 되었다.
아래 사진들 중 맨 위의 것이 누구나가 다 알고 있는 이 학교의 로고이다. 그런데 이 로고가 하버드 대학교의 원래 로고가 아니란 사실을 아는가? 대부분은 이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있다.
이 학교 졸업생들도 잘 모른다. 우리 큰 딸이 이 학교(Harvard Graduate School of Education)를 졸업했는데, 딸에게 물어봤다. 역시 이런 사실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 현재 하버드가 사용하고 있는 이 변경된 로고를 보면 책 두 권이 위에 오픈되어 있고, 아래에도 오픈된 책 한 권이 있다. 그 책 속엔 ‘진리’(truth)를 의미하는 라틴어 ‘veritas’가 두 글자와 세 글자(‘ve-ri-tas’)로 나뉘어 새겨져 있다.
‘학문의 전당’인 대학교에 ‘진리’보다 더 적절한 단어는 없었으리라. 진리가 들어 있는 것이 책이므로 책보다 더 나은 로고도 없을 게다. 그런데 이 로고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알 필요가 있다. 원래의 로고를 변경한 일은 처음 그것을 만든 이들의 정신을 완전히 훼손한 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이었다. 이 학교의 초대 이사들은 청교도 출신의 목사들이었다. 그들은 신명기 29장 29절을 학교의 슬로건으로 정했다.
“‘감추어진 일’(The things hidden)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The things revealed)은 영원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에게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 “‘숨겨진 일’은 하나님께 속해서 아무도 알 수가 없고, ‘드러난 일’은 그 말씀대로 행하게 하기 위해 오픈되었다”라는 뜻이다.
쉽게 말해서, 아무리 우수한 학교의 탁월한 학생이라도 아는 것도 있지만 모르는 것도 있다는 뜻이다. 학문의 전당 대학교에서 풍부한 지식을 배우는 학생들은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한계를 알고 늘 겸손해야 한다는 의미 아니겠는가?
이렇게 소중한 뜻이 들어있는 원래의 로고를 찾기 위해 한 동안 인터넷을 뒤진 바가 있다. 몇 주 동안 뒤지고 또 뒤졌지만 찾을 길이 없었다.
수년 전 큰 딸의 졸업식을 맞아 하버드를 방문해서 건물들을 찾아다니며 혹시라도 원래의 로고가 새겨진 데가 없는가를 이 잡듯이 찾아봤다. 그러다가 드디어 원하던 그 로고를 찾았다.
건물에 새겨진 오리지널 로고였다. 너무 반가웠다. 아래의 둘째 줄 왼쪽 사진이 원래의 로고이다. 파란 화살표가 새겨진 아래의 책을 관찰해보라. 오픈되어 있나 덮여져 있나? 덮여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이게 하버드 대학의 원래 ‘오리지널 로고’이다. 천신만고 끝에 찾아낸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이 로고가 사라지고 지금의 로고로 대체되어 버린 것이다. ‘우리는 세계 최고의 대학이므로 모든 지식을 알 수 있다’란 뜻에서 아래 덮여진 책을 오픈하고 만 것 아니겠나.
이런 교만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래서 지금 하버드가 학문적으론 세계 최고의 대학이 맞을지 모르나, 영적으론 아주 교만한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다. 청교도 정신으로 시작한 이 학교의 신학부(Divinity School)는 리버럴한(liberal) 색깔을 띤지 오래다.
예수가 “나의 아내”라는 표현을 썼다고 하는 고대 파피루스 조각이 발견됐는데, 이것을 해독한 카렌 킹(Karen King)이라는 교수는 “기독교는 전통적으로 예수가 결혼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고수해왔으나 그를 뒷받침할 믿을 만한 역사적 증거는 없었다. 그런데 이 파피루스 속에서 예수는 마리아를 ‘내 아내’로 지칭했다”고 주장한 바 있는데, 이 교수는 바로 하버드 신학대학교에서 기독교 역사를 가르치는 사람이다.
성경과 예수에 대해 이런 회의적인 자세를 가진 교수에게서 무슨 진리를 배울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얼마 후 이 파피루스는 믿을 수 없는 자료임이 들통 나고 말았다. 그러던 차에 하버드 신학대학 교수인 하비 콕스(Harvey Cox)가 쓴 『예수 하버드에 오다』란 책이 출간됐다.
예수의 삶과 사유를 통해 현대 사회의 윤리적 위기를 극복할 단초를 제시하려는 의도를 가진 이 책은 여전히 ‘윤리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고민을 던져준다. 하비 콕스는 많은 고민 끝에 여러 과목 중 하나로 <예수와 윤리적 삶>이란 과목을 개설한다.
1982년 이 과목이 개설되기 전까지 하버드 대학에서는 오랜 세월 동안 ‘예수’라는 이름이 들어간 과목은 없었다. 하버드 대학이 원래 1636년 목사를 양성하기 위한 기관(신학부)으로 시작된 점을 염두에 둔다면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예수’란 이름이 70여년 만에 하버드에 등장한 셈이다.
하비 콕스는 그 후 20여 년 동안 이 수업을 진행하면서 일생에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한다. 미국과 국제 사회의 주류로 진입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전 세계에서 모여든 이 똑똑한 학생들은 너도나도 예수를 통해서 윤리적 통찰을 얻기를 기대하며 이 수업을 신청했다. 수강생 수가 많아지자 강의실을 넓은 곳으로 옮겨야 했고, 나중에는 15명씩 여러 조로 나누어 토론을 할 수단까지 강구해야 했다.
하버드 대학에서 이런 작은 변화라도 일어나고 있음은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세계 최고의 지성을 자랑하는 초일류 대학이라 할지라도 창조주 하나님 앞에선 무지하다고 고백하고 겸손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버드는 원래의 로고가 지닌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벧전 5:6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약 4:10절도 이렇게 말씀한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면 높임을 받게 해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높이셨을 때 더욱 조심해야 한다. 교만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잘 나갈 때 더욱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는 이를 하나님은 더욱 높이 사용하실 것을 기억하고 살자. 나 역시 이제 오리지널 로고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어린 아이처럼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나를 낮추는 자가 되어 천국에서 큰 자가 되어야겠다(마 18:4)고 조용히 다짐해본다.
글을 주신 신성욱 교수는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설교학 교수,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에서 공부했음' University of Pretoria에서 공부했음' Calvin Theological Seminary에서 공부했음'
총신대 신학대학원에서 언어학 전공' 계명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과 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