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페이스 북에서 페친 들의 묘비명이 올라오는 걸 심심찮게 본다. 그걸 보는 순간, 내 묘비명에는 어떤 내용의 글이 새겨질까 궁금해졌다. 대학시절 영문학과를 졸업할 때 쓴 학사논문의 주제는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의 처녀작 ‘Dubliners’(더블린 사람들)이다.
오랜 만에 그 책을 읽고 있는데 문득 떠오르는 묘비명이 하나 있다. 묘비명 하면 누구에게나 얼른 떠오르는 글귀이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가 남겼다고 하는 비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처음 이 묘비명을 접했을 때 기분이 묘했다. 재치와 위트, 유머가 느껴지면서도 동시에 “시간 많은 줄 알고 막 살다보면 곧 죽음이다. 그러니 잘 살아라!”는 경고처럼 와 닿았다.
그런데 이 묘비명은 사실 국내 한 통신사의 의도적 오역이었음이 나중에 밝혀졌다.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바로 이 말인데, 어디에도 ‘우물쭈물’이라는 단어는 보이지 않는다. ‘show’라는 브랜드와 버나드 ‘쇼’(shaw)의 발음이 비슷하다는 데서 착안하여 묘비명을 재밌게 번역해서 마케팅에 활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오역이든 바른 번역이든 내게 다가오는 느낌은 별반 다르지 않다. 버나드 쇼는 아일랜드 출신의 극작가이자 소설가로 1925년 노벨상을 수상했다. ‘셰익스피어 이후 최고의 극작가’라는 평가를 받아왔으며, 영국 근대극을 확립하고 부흥시킨 장본인이다.
묘비명에서 눈치 챌 수 있듯이, 그의 작품에는 해학과 위트와 풍자가 넘친다. 그의 탁월한 유머와 여유 넘치는 삶의 자세가 늘 부러웠다. 그 외에 유명한 이들이 남기고 간 기억에 남는 묘비명 몇 개만 더 소개해보자.
“인생이란 원래 그렇게 덧없는 것이다.” 태조 왕건(877~943) “괜히 왔다 간다.” 걸레스님 중광(1934~2002) “천당이 가까운 줄 알았는데, 멀어 멀어!” 박수근(1914~1965) “일어나지 못해 미안하오.”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 “모든 것을 갖고자 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갖지 못했소.” 기드 모파상(1850~1893) 모두가 지내온 과거의 삶을 후회하는 내용들이다. 이들의 주검 앞에 남겨진 묘비명의 내용과는 달리, 오래도록 잊어버릴 수 없는 감동적인 묘비명이 하나 있다.
마크 배터슨(Mark Batterson)이 쓴 『올인(ALL IN)』이란 책에 나오는 묘비명이다. 선교사 중에 밀른(A. W. Milne)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남태평양 뉴헤브리디스 제도의 원주민들이 앞서 파송했던 모든 선교사들을 살해했다는 사실을 잘 알았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그곳으로 향했다. 그는 목숨을 잃을까봐 두려워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신은 이미 죽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관을 짜서 함께 보따리를 쌌다. 다행히 그는 살해되지 않고 35년 동안 원주민들을 사랑하며 그들과 함께 살 수 있었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원주민들은 그를 마을 한가운데에 묻고 묘비에 다음과 같은 비문을 새겼다. “그가 왔을 때 빛이 없었다.” “그가 떠났을 때 어둠이 없었다.”
요 1:5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 1:9절도 이렇게 말씀한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이 빛은 누구일까?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사람들이 그분의 무덤에 묘지명을 남겼다고 한다면 과연 어떤 내용이 새겨져 있을까? 다음 두 문장이 아닐까 싶다. “그가 왔을 때 빛이 없었다.” “그가 떠났을 땐 어둠이 없었다.” 세상을 떠난 밀른 선교사에게 원주민들이 새겨준 비문의 내용 그대로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무덤 앞에 새겨질 비문의 내용으로 이보다 더 적합한 말이 또 있을까 싶다. 위에 소개한 “괜히 왔다 간다”나 “모든 것을 갖고자 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갖지 못했소”란 비문의 내용과 비교해보라.
얼마나 차별화 되는 삶을 살다 갔으면 저리 기억될까?
글을 쓰고 있노라니 문득 내가 세상을 떠났을 땐 어떤 묘비명이 새겨질까 걱정되기도 하고 궁금해지기도 한다. 내가 미리 써둘 수도 있지만 가족이나 다른 이의 평가를 받고 싶다. 그래야 지금보다는 더 보람되고 나은 삶을 살 것이기에 말이다.
실은 내가 원하는 묘비명이 있긴 하다다. 사람들이 그대로 적어준다면 그보다 더 영광스런 일이 없겠다. 바로 이 두 문장이다. “그가 왔을 때 빛이 없었다.” “그가 떠났을 땐 어둠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