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그릇 같은 우리 한 사람의 가치는? 'Priceless'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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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그릇 같은 우리 한 사람의 가치는? 'Priceless' 다.
  • 박동현 기자
  • 승인 2020.08.10 1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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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은 무엇일까?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모나리자'라고 한다. 미술전문가들은 그 가치를 40조 원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왜 그리 비싼 걸까? 천재 미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림높이 77cm x 폭 53cm.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모나리자 원화, (약40조원 가치) 방문자는 그림 가까히 갈수 없다. 방탄유리박스와 전자 도난 방지 장치기 되어 있다. 촬영 박동현 기자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은 무엇일까?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모나리자'라고 한다. 미술전문가들은 그 가치를 40조 원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왜 그리 비싼 걸까? 천재 미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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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한 작품이 경매장을 떠들썩하게 만든다. 그 경매장을 시끄럽게 만든 작품은 바로 17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 되는 <모나리자>의 복제품이다.

그날 많은 전문가들은 9,000만 원~1억 1,600만 원 선으로 낙찰가를 예상했다. 경매의 결과는 어찌 됐을까? 그날 <모나리자>의 모작을 가져간 사람이 낙찰가로 지불한 가격을 바로 7억 1,600만 원으로 전문가들이 예상한 가격의 약 8배 나가는 가격에 낙찰이 됐다. 모작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비싼 가격을 형성하는 이유는 다빈치와 <모나리자>가 갖고 있는 상징성 때문이라고 한다.

 피카소의 1955년 작 <알제의 여인들>이 2015년 5월 세계 최대의 경매업체 ‘크리스티’가 마련한 뉴욕 경매에서 1억 7,940만 달러(약 2,180억 원)에 낙찰됐다. 하지만 그 판도는 계속 바뀌고 있다. 게다가 비공식적으로 열리는 경매와 거래들까지 포함하면 세계에서 비싼 그림의 순위는 짐작조차 힘들 정도라 한다. 프랑스 화가 폴 고갱의 1892년 작 <언제 결혼하니?>란 작품이 있다.

이 그림은 2015년 2월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비공식 경매에서는 약 3억 달러(약 3,400억 원)에 팔려 지금까지는 세계 최고가의 미술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많은 사람이 궁금해 한다. “그림 값은 도대체 어떻게 정해지는가?” “어떻게 캠퍼스 한 장에 불과한 그림이 수백, 수천억 원을 호가하는 것인가?” 일반적으로 그림의 가격은 작품의 미술사적 위치, 질적 수준이나 상태, 비슷한 작품의 거래 가격, 작가나 작품의 인기 및 호응 공감의 정도 등으로 산정된다고 한다. 

즉, 그림 가격은 미술사가나 평론가들에 의해 영향을 받고, 이전에 팔린 가격을 기준으로 작품의 질이나 상태, 그리고 최근의 시장 동향을 참조하여 가이드라인이 결정되는 것이다. 아, 이런 작품 하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가 하면 프랑스에는 수 천만 원을 호가하는 닭고기 요리가 있다고 한다. 무슨 닭고기 요리가 그리 비쌀까? 닭고기 한 마리가 비싸봐야 만 원 이상 나가겠는가?

금으로 칠한 닭고기일까? 보통 닭들보다 몇 배나 장수한 닭으로 만든 건강 요리일까? 아니다. 닭고기 요리에 곁들이는 와인의 가치에 따라 닭고기 요리의 가격이 천차만별이라고 한다. 10년 묵은 와인, 50년 묵은 와인, 100년 묵은 와인에 따라 닭요리의 가격이 결정되는 것이다.

르브르 박물관 입구의 안내책자 커버
루브르 박물관 입구의 안내책자 커버

오늘 우리 자신의 값을 매긴다면 얼마나 될까? 10억? 100억? 10조? 아니다. ‘Priceless’다. (값을 매길 수 없다)이다. 왜일까? 질그릇에 보배를 담았기 때문이다. 고린도후서 4장7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닭고기 한 마리에 수천 만 원짜리 와인이 들어가니까 요리 값이 수천 만 원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질그릇처럼 깨지기 쉽고 보잘 것 없는 죄인이지만 우리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에 우리의 값은 그에 따라 매겨지는 것이다.  우리의 능력과 가치가 하나님께 있고 우리 자신에게 있지 않음을 깨달을 때 우리에게 소망이 있다.

낡고 구겨지고 더럽혀진 오만 원짜리 신사임당 지폐가 있다. 얼마의 가치가 있을까? 오만 원이다. 어째서 그럴까? 비록 추하고 보잘 것 없는 지폐지만 거기에 한국은행 총재의 직인이 찍혀 있기 때문이다. 지폐 자체에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지폐에 찍혀 있는 이름에 가치가 있는 것이다.

신성욱 교수 

그렇다. 사도행전 4장12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란 이름이 새겨져 있기에 우리에게 구원의 소망과 기쁨이 있는 것이다. 허물과 죄로 인해 불안과 공포와 절망 속에 죽다 못해 살아가는 이가 있는가? 자신의 초라한 모습으로 인해 생을 포기하고 싶은 이가 있는가?

나보다 잘나고 잘 산다고 생각하는 이들과 비교해서 턱없이 떨어지는 자신의 모습 때문에 모든 소망을 포기한 이가 있는가? 우리 속에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이 새겨주신 이름을 바라보며 소망과 용기를 가지고 다시 일어서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이 40조 이상이라면 하나님의 걸작품인 우리의 몸값은 측정불가(Priceless)임을 꼭 기억하고 살자.

필자 신성욱 교수는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설교학 교수,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에서 공부했음, University of Pretoria에서 공부했음, Calvin Theological Seminary에서 공부했음,총신대 신학대학원에서 언어학 전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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