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망대해를 항해 중인 유조선 한 척이 진행방향을 90도 돌리려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일단 유조선의 엔진을 끄고 8km 이상을 나아가야 한다. 무게가 더 나가는 항공모함이라면 유조선보다 더 많은 시간과 거리 그리고 에너지가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나아가던 방향을 바꾸기 위해서는 또 다른 강력한 힘이 필요하다. 하지만 진행 방향을 바꾸는 것은 생각만큼 그리 쉽지 않다.
인간의 생각을 지배하는 관성의 법칙, 고정관념이 바로 그 원인이다.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육중한 항공모함 이상으로 거대한 고정관념이 자리를 틀고 앉아 있다. 때문에 기존의 것을 버리고 새로운 생각으로 방향을 바꾸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 것이다.
2009년 말, 기후변화협약 총회가 열린 덴마크 코펜하겐에 기이한(?) 동상 하나가 세워져 있다. 덴마크의 조각가 Jens Galschiøt의 유명한 작품이다. 과다하게 비만인 백인 여성이 바짝 마른 아프리카 남성의 어깨 위에 올라타 있는 모습이었다(그림). 남성의 모습은 누가 봐도 힘겨워 보인다. 동상 앞 표지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나는 한 사내의 등 위에 올라타 있다. 나는 나 때문에 점점 아래로 가라않고 있다. 나는 그를 위해 뭐든 할 생각이다. 단, 사내의 등 위에서 내려가는 것은 빼고.”
이제 막 경제성장을 시작한 개발도상국가에 대한 선진국의 끊임없는 탐욕과 이기심을 조롱하고 비판하는 내용이다. 이 글에 등장하는 ‘나’(I)는 바로 고정관념의 장본인이다. 사내 등에서 내려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건만 그 일만은 절대 하지 못하겠다고 버티니 정말 답답한 노릇이다.
그렇다고 포기하지 말라. 단단하게 굳어버린 고정관념을 깨부수라. 그 어떤 생명도 뿌리내리지 못할 것 같은 황무지라도 창의력이라는 엘도라도로 바꾸는 노력을 게을리 해선 안 된다.
3일이면 비행기 한 대를 뚝딱 만들어낸다는 보잉(Boing)사의 과거 사례를 소개한다. 신출내기 신입사원들이 들어오면 R&D 담당자는 이들을 별도 공간에 모아놓고 연구개발 과제 하나를 던져주며 이렇게 말한다. “별로 어려운 과제는 아니니, 한번 해결해보도록 하세요.”
과제를 받은 신입사원들은 처음에는 당황하지만 ‘별로 어려운 과제가 아니다’는 담당자의 말을 위안 삼아 몇 날 며칠 과제 해결에 몰입한다. 그리고 일주일 정도 시간이 흐르면 많은 신입사원이 부여된 과제의 솔루션을 찾는데 성공한다.
사실 신입사원들에게 건넨 과제는 다름 아닌 그동안 보잉사에서 해결하지 못한 난제 중의 난제였다. 그렇다면 경험이나 지식이 부족한 신입사원들이 어떻게 그런 지난한 문제를 간단히 해결한 것일까? 키워드는 하나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과제가 지금껏 아무도 해결하지 못한 난해한 과제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땅벌은 몸이 무거운 것에 비해 날개가 약하다. 기체 역학적으로 볼 때 땅벌이 무거운 몸을 가지고 날 수 있다는 사실은 기적에 가깝다. 그러나 땅벌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날아다닌다. 과연 무엇이 땅벌로 하여금 그 무거운 몸을 날게 할 수 있었을까?”
이는 세계적인 화장품 회사 메리 케이(Mary Kay)의 창업자 메리 케이 에이가 던진 질문이다.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까? 만약 땅벌이 자기 몸이 무거워 역학적으로 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처음부터 주눅이 들어 날아야겠다는 생각은 던져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땅벌은 오로지 나는 일에만 몰입하여 자기 몸의 육중한 무게를 잊고 있었다.
바로 이것이 땅벌이 날 수 있는 비결이었다. 보잉사의 신입사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주어진 문제에 대해 처음부터 의심을 품거나 어렵다거나 불가능하다는 ‘선입견’을 가졌다면 문제 해결은 불가능했으리라. 그들은 얼마든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과 희망을 가지고 솔루션 찾기에 몰입했다. 그래서 결국 해낸 것이다.
여호수아와 갈렙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다(출 1:3-4)는 하나님의 약속에 몰두하다 보니 자신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힘들다는 사실은 계산할 여지가 없었다. 그렇다. 하나님의 약속과 법칙을 붙잡으면 편견과 고정관념과 상식을 깨버릴 수 있다. 지금까지 자신의 생각 속에 스며들어 자리 잡은 모든 선입견들은 다 부숴버리고 온전한 하나님의 약속과 법칙만 믿고 전진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필자 신성욱 교수는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설교학 교수이다.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에서 공부했음, University of Pretoria에서 공부했음, Calvin Theological Seminary에서 공부했음, 총신대 신학대학원에서 언어학 전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