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인뿐 아니라 ‘죄의 희생자’ 위한 칭의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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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뿐 아니라 ‘죄의 희생자’ 위한 칭의 필요”
  • 이대웅 기자
  • 승인 2016.03.22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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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르겐 몰트만 교수, 장신대서 ‘우리 시대에 공의의 해가 떠오르리라’ 강연
▲ 해외석학 초청 강좌가 장신대 세계교회협력센터에서 진행되고 있다

2016년 기독교사상연구부 '해외 석학 초청 강좌'가 3월21일 오후 서울 광장동 장로회신학대학교(총장 김명용 박사) 세계교회협력센터에서 개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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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에서는 올해 90세인 '희망의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Jurgen Moltmann) 튀빙겐대 은퇴교수가 '우리 시대에 공의의 해가 떠오르리라'라는 제목으로, 루터의 소논문(Traktat)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통해 그 당시와 오늘날 '범죄자와 죄의 희생자'에 대해 살폈다. 

그는 "'죄의 노예들'을 위해 가톨릭에서는 고해성사가, 개신교에서는 '믿음 안에서의 죄 용서'가 있는데, '죄의 희생자들'에 대해선 아무 대책이 없다"며 "죄인의 '칭의'에 따르면, 우리는 피해자의 칭의를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단지 죄인만 의롭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먼저 폭력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의를 창조하시기 때문으로, 이는 구약의 시편들에 잘 드러나 있다"고 취지를 밝혔다.

몰트만 교수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1526년 루터가 작성한 위대한 종교개혁 문서이고, 당시에도 폭넓은 반향을 불러일으켰을 뿐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그리스도교 세계를 움직이고 있다"며 "19세기 헤겔이 칭찬한 것처럼 루터의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개신교를 '자유의 종교'가 되게 했고, 그리스도와의 연합 안에 있는 하나님 경험을 어마어마한 자유 경험으로 체험하는 법을 가르쳐 줬다"고 평가했다.

루터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에서 상호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두 개의 테제(praepositiones)를 제시한다. 이는 '그리스도인은 모든 사물의 자유로운 주인이며 그 어느 누구에게도 복종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것에 봉사하는 종이며 모든 사람에게 복종한다'로, 루터는 이 둘을 통해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획득하고 수여한 자유', 즉 십자가에서 획득하고 말씀과 성례전에서 수여한 자유를 30절로 나눠 전개하고 있다.

그러면서 마지막 30절에서 환호성과 같은 다음의 결론을 내린다. "보라! 이것이 바로 의롭고도 영적이며 그리스도교적인 자유이다. 죄와 율법들과 계율들에서 우리 마음을 자유하게 만드는 바로 그 자유이다. 하늘이 땅을 능가하는 것처럼 다른 모든 자유를 능가하는 바로 그 자유이다." 몰트만 교수는 이 두 테제에 대해 "그리스도인은 자기를 벗어나 있는데,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 안에 있고, 사랑을 통해 자기를 벗어나 사랑받는 사람들 안에 있다"며 "그리스도인은 자기를 벗어나 그리스도에 의해 발견되고 하나님에 의해 사랑받는 행복 앞에 있다"고 요약·정리했다.

위르겐 몰트만 교수는 이러한 루터의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믿음 안에서 죄의 '행위자들'의 자유에서 '죄의 희생자들'의 자유로 옮기는 일을 시도했다. 그는 "유럽-로마의 문화 환경에서는 일방적으로 죄의 행위자 위주로 방향이 설정돼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악의 희생자들을 잊지 않으신다. 그리스도 자신이 하나님 없는 악한 폭력의 희생자 되셨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바울부터 루터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을 기울이면서 그 자신이 행한 악의 피해자들, 행해야 할 선을 행하지 않음으로써 생겨난 피해자들에 관해선 다루지 않는데, 여기서 기독교의 은총론 안에 커다란 빈틈이 드러난다"고 지적했다.

그는 "'내 안에 거하는 죄'와 그 죄의 노예인 '나'에 관한 바울의 표현들과 달리, 공관복음에서 예수의 우선적 시선은 가난한 자들과 병든 자들, 자기 백성의 소외된 자들에게 가 있으며 가난한 백성들을 위해 '한탄하고 있음(마 9:36)'이 두드러진다"며 "예수의 시선은 죄의 노예들이 아니라 오히려 죄의 희생자들을 향하고 있고, 그들에게 하나님나라의 자유하게 하는 복음을 가져다 주신다. 그 하나님나라는 이미 그들의 것"이라고 설명했다.

 몰트만 교수(중)가 강연하고 있다. 몰트만 교수는 이번이 열두 번째 장신대 방문이라고 밝혔다. ⓒ이대웅 기자

몰트만 교수는 "루터는 처음부터 죄의 행위자들과 죄의 노예들만 주시하면서, 사람들을 오직 그들의 선하고 악한 행위들의 주체로만 보고 있다"며 "그러나 루터는 다른 사람들이 행한 악한 행위들로 인해 당하는 사람들의 고난을 주시하지 못하고 있다. 불의와 폭력의 희생자들은 자신들의 행위의 주체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악한 의지에 의해 영혼이 상처를 입고 굴욕과 모욕, 폭력과 고문, 자신들의 자존감 파괴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고 밝혔다.

그는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께서 가신 곳까지 함께 가신다. 하나님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 계셨고, 예수는 자신의 수난의 길에서 자신처럼 그렇게 굴욕당하고 고문당하고 버림받은 희생자들에게로 하나님을 이끌어 들인다"며 "그리고 불의와 폭력의 희생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위기에 처해 있는 자신들의 하나님의 형제들을 인식할 수 있다. 시험에 들고 죽으시는 그리스도는 시험에 들고 죽는 사람들을 위한 위로가 되신다. 하나님께 버림받은 죽음에 자신을 내어 줌으로써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람들에게로 이끈다"고 전했다.

위르겐 몰트만 교수는 "골고다 언덕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수많은 십자가들 사이에 서 있다. 그 수많은 십자가들이란 네로 황제부터 히틀러의 '죽음의 수용소'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수용소 군도와 라틴아메리카의 군사 독재자들의 압제 아래 '실종된 자들'에 이르기까지, 비인간적 역사 속에 폭력을 저질렀던 자들의 '유혈의 길'에 서 있는 십자가들"이라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이 버림받은 희생자들의 고통에 참여하고 버림받은 우리와도 함께하신다는 사실에 대한 표시"라고 했다.

질의응답에서 이와 관련해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었을 때 그리스도의 버림받으심과 동일한 경험을 함으로써, 십자가의 희생에 결국 우리를 극복시켜 줄 힘이 충분히 있음을 깨닫게 됐다"고도 했다.

또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죄의 희생자들과 동일시한다는 사실에서 '최후의 세계 심판 비유(마 25장)'는, 그리스도께서 자신과 함께하고 있는 희생자들의 관점에서 가해자들을 심판한다"며 "이것이 바로 위로의 '연대적 기독론'이고, 이는 우리 그리스도교 전통이 오래 전부터 간과해 왔던 것"이라며 '가해자들'을 위한 고해성사처럼 '죄의 희생자들'을 위한 대안들을 제시했다.

[장신대 해외 석학 초청 강좌 위르겐 몰트만] 이날 강좌에는 많은 학생들이 몰렸다. ⓒ이대웅 기자

먼저 '오직 진리'만이 희생자들을 자유롭게 만들기 때문에, 범죄자의 '죄의 고백'을 기다리지 말고 가해진 고통으로 인한 '자신들의 굴욕'에서 벗어나 더 이상 희생자로 남지 않도록 '자기 존엄'을 회복시켜야 한다. 이처럼 깊은 굴욕에서 벗어나 삶에 대해 철저한 긍정을 받은 다음에는 자신의 의지와 반대로 삶 속에 침입해 들어오는 악을 극복해야 한다.

그는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우리를 괴롭히는 수치와 치욕에서, 증오와 복수, 그리고 모든 악몽들에서 우리 영혼을 해방시켜야 한다"며 "죄의 용서는 희생자들의 왕적 권리이고, 그 권리는 희생자들을 가해자들보다 더 높이고 희생자들을 왕으로 만들며 희생자들을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그 누구에게도 굴복하지 않는 주로 만든다"고 언급했다.

몰트만 교수는 강연 후 질의응답에서도 "피해자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과 동시에 자신에 대한 증오를 경험한다"며 "이것을 그리스도교 신앙이 해방시키고 회복시켜야 한다"고 했다. '가해자의 죄 고백' 선행 여부에 대해선 "필연적이지만, 그것 없이도 희생자들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악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며 "죄의 고백은 결국 해방의 의미이지, 참회의 의미는 아니다"고 피력했다.

논의를 종합하면서 위르겐 몰트만 교수는 "루터는 오직 믿음 안에서의 자유와 사랑 안에서의 봉사 정신만 다루고 있다. 그러면 희망은 어디에 남아 있는가"라며 '그리스도인됨에 관한 테제'들을 제시했다. 이는 다음과 같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미래의 상속자이다. 그 미래에는 더 이상 주인도 종도 없다. 그리스도인은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의를 경험한다. 그리스도인은 또한 사랑 안에서 자신의 이웃의 권리를 위해 적극 개입한다. 그러나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은 인간의 유혈의 역사 위에, 그리고 고난으로 시험받은 이 땅 위에 떠오르는 하나님의 의의 태양을 '희망'한다."

▲ 장신대 김명용총장

마지막으로 그는 찰스 웨슬리(Charles Wesley)의 노래 "의의 태양이여, 떠오르라!"를 인용하면서 "압제당하는 자들에게 자유를, 굶주린 자들에게 빵을, 슬퍼하는 자들에게 위로를 가져다 주는 것이라면 언제나 우리는 '의에 거하는(벧후 3:13)' 저 땅을 선취적으로 앞당겨 취하게 된다"며 "우리가 수백 년에 걸쳐 혹사하고 착취한 지구에 가했던 상처들을 치유하는 곳이라면, 언제나 우리는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하나님나라의 미래의 상속자들"이라고 덧붙였다.

이후에는 마이클 벨커(Michael Welker) 하이델베르크대 교수가 '유럽의 종교개혁: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김명용 총장은 앞서 "몰트만 교수는 '20세기 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칼 바르트(Karl Barth)의 제자이고, 세계 신학계에 잘 알려진 '희망의 신학' 등으로 현대신학 거장의 맥을 잇고 계신 분"이라며 "세계적인 석학들을 모시고 이 시대의 신학적 현안에 대해 듣고 함께 고민과 대화를 나누게 돼 영광"이라고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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