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페이스북에서 읽은 아주 감동적인 예화이다. 사도행전 3장:1-19절과 연결이 되는 정말 소중한 이야기이다. 이 내용을 발견하고선 즉시 설교문 하나를 작성해버렸다. 아마도 내 18번 설교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이제 그 내용을 소개해보자.
미국의 폴(Paul)이라고 하는 한 회사원이 뉴욕에서 중요한 미팅을 마치고 자기 팀 동료와 함께 공항으로 갈려고 거리로 나왔다.
그런데 그 날이 금요일 오후 저녁시간이어서 교통체증이 심해 택시 잡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그런데 정말 기적적으로 빈 택시 하나가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이 택시를 보는 순간 다른 동료들이 쏜살같이 달려가서 그 택시를 잡아탔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너무 빨리 달려가는 바람에 바로 길 가에서 장사하고 있는 노점상의 야채 과일 박스를 차버리게 됐고, 과일과 야채가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리고 폴의 일행 중 어느 누구도 이를 개의치 않고 택시를 탔다. 그러나 폴은 택시를 타지 않고 그 자리에 순간 멈추어 섰다. 택시 안의 동료들이 외쳤다. “빨리 타라. 지금 이 택시 안 타면 비행기 놓칠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폴은 나를 놔두고 먼저 가라고 일행을 떠나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노점상 할머니에게 다가가니 그 할머니는 울고 있었다고 한다.
자세히 가서 봤더니 할머니는 앞을 보지 못한 시각장애자였다. 눈이 성한 사람이라면 바닥에 흩어진 과일이나 야채를 주우면 그만인데, 앞을 보지 못하는 할머니가 어떻게 그 과일과 야채를 주워 담을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앉아서 울고 계신 할머니를 폴이 위로해 드리면서 땅바닥에 떨어진 야채와 과일을 하나씩 줍기 시작했다. 이때도 폴 곁에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갔지만 다들 자기 갈 길이 바쁜지 아무도 노점상 시각장애인 할머니의 울음과 폴의 행동에 관심도 갖지 않았다.
폴이 야채와 과일을 다 정돈한 후에 지갑을 꺼내 돈을 할머니 손에 쥐어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할머니, 이 돈이면 손해 보신 것 충분히 해결이 될 것 같습니다.” 그랬더니 그 할머니가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Are you JESUS”(혹시 예수님이신가요?)
이 말을 듣고 당황한 폴이 “저는 절대 예수가 아닙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때 시각장애인 할머니가 아니라면서 계속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조금 전 노점 가판대가 넘어지고 과일과 야채가 땅에 떨어질 때 내가 도움을 요청할 분은 예수님 한 분 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나는 예수님께 이렇게 기도했지요. ‘JESUS, please come help me!’(예수님 나에게 다가오셔서 제발 나를 도와주십시오)
그랬는데 기도의 응답처럼 당신이 와서 나를 도와주었으니까, You must be JESUS(당신이 예수님이 틀림없어요).”
사도행전 3장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제9시 기도 시간에 성전에 올라가다가 나면서 걷지 못하는 병자를 만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안수하여 그를 낫게 하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정해진 기도 시간보다 병자의 육신과 영혼을 더 소중히 여기는 베드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규칙적인 기도 시간을 핑계로 병자를 외면하고 성전에 총총걸음으로 올라갈 수도 있었으나, 두 제자는 한 영혼을 더 소중하게 생각했다. 그 결과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병자는 육신의 병도 고침 받고 영적 구원도 받아 하나님을 찬미하게 되고, 그 소문을 들은 수천 명의 백성들이 나아와 베드로의 말씀을 듣고 천국 백성이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다.
그뿐 아니라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대단한 능력자와 경건자로 주목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요즘 교회나 성도나 목회자들이 세상으로부터 욕을 많이 먹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향해 ‘개독교’나 ‘먹사’란 말을 서슴없이 해댄다.
최근엔 이런 내용까지 올라온다. ‘한국교인들!! 모두 십자가 목걸이를 해주세요. 일반인들이 알아서 피해 다닐게요, 부탁합니다.’(아래 사진)
그리스도인이 본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받는 수치스런 현상이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고 수적인 성장까지 경험했던 초대교회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른 오늘 우리의 자화상이다.
사건이 있던 그날 밤 폴은 비행기를 놓치는 바람에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하룻밤을 더 뉴욕 호텔에서 머물면서 한밤 중에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When was the last time someone confused you for JESUS?"(누군가가 폴 너를 예수님으로 혼돈했을 때가 언제였나?)
그에게는 적어도 한 번은 그런 때가 있었다. 바로 시각장애인 할머니와의 사건이 있었던 그날 말이다.
Then what about us?(그럼 오늘 우리는?) 우리는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예수님 같다고 착각하게 만든 적이 있는가? 아직 없다면 우리는 아직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자라 할 수 없다.
베드로처럼 폴처럼, 남은 생을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이웃들을 위해 멋지게 잘 살아감으로, 세상 사람들이 우리 보고서도 ‘You must be JESUS!’(당신이 바로 그리스도시군요)라고 칭찬하며 따르는 기적의 주인공들이 다 되었으면 좋겠다.
필자 신성욱 교수는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설교학 교수이다.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에서 공부했음, University of Pretoria에서 공부했음, Calvin Theological Seminary에서 공부했음, 총신대 신학대학원에서 언어학 전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