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신앙의 대물림 법칙. 오세열 교수
상태바
(외부칼럼) 신앙의 대물림 법칙. 오세열 교수
  • 박동현 기자
  • 승인 2021.03.05 15: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입시 철이 다가오면 교회마다 수능보는 자녀들을 위한 다니엘 기도회가 연례행사처럼 열린다. 미지근한 신앙을 가진 크리스천들도 이때만큼은 구름떼같이 기도회에 모인다. 그러나 입시가 끝나고 합격자 발표가 있은 후 응답받지 못한 신자들 중 일부는 교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사진출처 구글

토마스 풀러는 구약시대의 3천년에 걸친 왕조를 분석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상식은 하나님을 잘 섬겼던 왕의 아들은 그대로 신앙을 전수받아 하나님을 경외하는 왕이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예상은 완전히 깨어졌다. 성경에 기록된 네가지 케이스를 증거로 내놓았다.

Like Us on Facebook

첫째, 악한 아비에게 악한 아들이 나왔다. 르호보암과 그 아들 아비야는 둘다 하나님을 거역한 왕이었다. 
둘째,악한 아비가 선한 아들을 낳았다. 아비야는 하나님을 불순종했지만 아들 아사는 하나님을 잘 섬겼다.
세째, 선한 아비가 선한 아들을 낳았다. 아사는 하나님을 잘 섬겼고 아들 여호사밧도 훌륭한 모범을 보였다.
네째, 선한 아비가 악한 아들을 낳았다. 하나님을 잘 섬겼던 여호사밧의 아들 요람은 불량한 아들이었다.

선한 아비들의 신앙이 아들에게 전수되지 않는 것과 같이 불량한 자의 성품도 그대로 아들에게 전수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오늘날 현실도 마찬가지다. 모범적인 신앙을 가진 가정에서 어떤 자식이 나올 지는 예측할 수 없다.

기도의 믿음인가 믿음의 기도인가

입시 철이 다가오면 교회마다 수능보는 자녀들을 위한 다니엘 기도회가 연례행사처럼 열린다. 미지근한 신앙을 가진 크리스천들도 이때만큼은 구름떼같이 기도회에 모인다. 그러나 입시가 끝나고 합격자 발표가 있은 후 응답받지 못한 신자들 중 일부는 교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정은혜를 받기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나서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믿음을 저버리고 냉소적이 되거나 심지어는 교회를 떠난다. 이들은 기도를 어떤 마술적인 불가사이한 힘이라고 믿는다.

기도의 믿음(Faith of prayer)과 믿음의 기도(Prayer of Faith)는 큰 차이가 있다.

필자 오세열 교수는 Midwest 대학원 리더십교수며 성신여대 명예교수, 목회학 박사(D.Min),목사, 경영학박사(고대)이다.

우리가 믿는 믿음의 대상이 기도자체인가 아니면 하나님이신가에 따라 둘은 구분된다. 기도의 믿음을 가진 자는 기도에만 치중한 나머지 기도하고 있는 대상인 하나님께는 관심이 부족하다. 이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자기가 원하는 것을 빠르게 얻어내고자 한다. 그러나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마치 문제에 봉착한 우상숭배자들이 섬기던 우상을 때려 부수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저버린다.

그러나 믿음의 기도는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모든 것이 그분의 손안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55:9).”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보다 크시며 우리의 유익을 위해 일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어린이가 칼을 달라고 조르면 그것을 줄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기도의 응답은 ‘Yes, No, Wait, Another’의 네 가지 형태로 나누어진다.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다면 즉각적인 응답(Yes)이 오겠으나 정욕으로 구하는 경우 거절된다(No).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약4:3).” 나머지 두 가지 형태는 Wait 와 Another이다.

우리의 생각보다 크신 하나님은 지금 당장 응답하는 것보다 좀 더 시간이 지난 후에 응답하는 것이 좋다면 기다리게 하신다. 그리고 우리가 구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있다면 다른 것으로 채워 주신다. 기도는 네 가지 응답 중 어떤 경우든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이 된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나애심은 1950~60년대 활동했던 대중가수이자 배우였으며 이국적인 외모와 탁음이 섞인 허스키한 목소리로 큰 인기를 누렸다. 말년에 모든 연예활동을 끊고 신앙생활에 전념했다. 그런데 나애심은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항상 자신의 주소와 성명을 기도 첫머리에 넣고 기도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누구의 기도인지 구별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 저는 ’서울시 성북구 종암동 23-5번지 나애심입니다‘라고 한 후 기도했다. 그녀는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능력을 가지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주소와 성명을 댈 필요가 없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