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역사학자 토인비는 유라시아 대륙의 심장부를 지나는 길의 절반은 시리아의 알레포에서 만나고 나머지 절반은 아프가니스탄의 바그람에서 만난다고 하였다. 그런데 필자는 중요한 이 두 교차로에서 성경에 예언된 종말적 재난과 난민의 시대가 시작된 것 같은 인상을 받고 놀라고 있다.
2001년 9.11 테러와 이어진 미국과 아프가니스탄 탈레반과 전쟁, 그리고 2011년 아랍의 봄에 이어 진 시리아 내전 등은 페르시아권과 아랍권으로 대표되는 이슬람세계 전체를 흔든 난민의 시대 서막이었다.
여기서 ‘난민의 시대’라는 표현은 단지 난민들의 숫자가 증가하게 되었다는 것뿐 아니라, 1,400년 이슬람 역사 가운데 한번도 찾아볼 수 없었던 무슬림들의 거대한 회심이 난민들 가운데서 일어나고 있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2020년 말 기준, 세계의 난민(강제적 이주자)은 8,240 만명, 이중 아직 자국의 국경을 넘지 못한 국내 피난민은 4,800만 명,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에서 보호받고 있는 해외 난민은 2,640만 명, 다른 나라에서 난민 보호를 요청한 난민 신청자는 410만 명이다.
2021년 9월 말 현재 한국의 누적 난민 신청자는 72,800명이고 이중 난민 인정자는 1,125명(인정률 2.8%), 인도적 체류자는 2,411명이다. 난민들의 출신국 중 1위는 제1교차로 알레포가 있는 시리아(670만 명), 2위는 제2교차로 바그람이 있는 아프가니스탄 (260만 명)이다.
아프가니스탄은 전국토의 50%가 해발 2000미터 이상의 산악지형이며, 14개의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국가이다. 인구 3800만 명의 약 40%인 1500만 명은 파슈툰 민족이고, 페르시아어(다리어)를 사용하는 타직족과 하자라족, 그밖에 우즈벡족과 투르크멘족 등 소수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프가니스탄은 세계의 지붕 파미르고원(타지키스탄)과 이어지는 5,000~7,000 미터 높이의 힌두쿠시산맥이 나라의 가운데를 지나가는 험한 산맥과 사막으로 인해 고립적이고 분산적이며 독립성이 강하고 혈연 중심의 강력한 부족사회 전통을 가진 각 종족들이 생존을 위하여 상호 투쟁하기 때문에 통합국가를 이루기가 대단히 어려웠다.
아프가니스탄의 주류는 파슈툰족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19세기 후반까지 파슈툰 사람들을 ‘아프간인’이 라고 불렀다.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억압을 당한 종족은 하자라족이며, 아프간 난민들의 대부분을 차지 한다.
하자라족은 몽골의 징기스칸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였을 때, 이 지역을 다스리도록 남겨둔 ‘몽골인’ (페르시아어로 하자르) 1천 명의 후손이다. 이들은 페르시아(이란) 말인 다리어를 쓰며 시아파 무슬림이기 때문에 파슈툰족이나 탈레반과 같은 수니파가 주류인 아프가니스탄 정부로부터 오랫동안 박해를 받아왔다.
오늘날 이 하자라족들 다수가 예수께로 돌아오고 있다. 이는 마치 아랍권 난민들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대부분의 추수가, 나라없이 아랍지역에서 박해당하고 있는 세계 최대 종족인 쿠르드족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난민은 전쟁이나 박해의 위험 때문에 사회적 토대인 조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외국인이다. 삶의 근거인 조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의미에서 토대가 무너지고 뿌리가 뽑힌 사람들이다.
난민이 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고 뿌리가 뽑힌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재난을 통하여 난민들의 견고한 토대를 흔들어 허망한 것들을 깨뜨리시고 난민들을 생명으로 추수하신다.
마태복음 24장과 누가복음 21장에서 재림과 종말의 징조에 관한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난리와 난리의 소문이 있겠고,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라고 하셨다.
여기서 재난은 ‘해산의 고통’(birth pains)이라고 번역되어 있다. 시작된 재난은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는 그제야 끝이 날 것이다. 이는 마치 아기가 태어나야 산통이 끝나는 것과 같다.
결국, 세계적 재난은 처음도 끝도 복음이 온 세상에 전 파되고 새생명들이 태어나는 해산의 과정이요 진통이며 마지막 때가 이를수록 더욱 빈번히 일어날 일임을 알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필자는 난민이 오는 것은 바로 주님이 오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난민들과 함께 주님이 우리에게 오신다. 세상에 난민이 많아질수록 하루하루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이 가까 워진다고 믿는다. 그날이 가까울수록 처처에는 재난이 계속 있을 것이다. 그리고 땅끝의 난민들은 그 재난의 한가운데서 주님과 함께 우리에게 오신다. 따라서 한국 교회는 주님의 사랑으로이 아프가니스탄 난민들 을 적극적으로 도와야 할 것이다.
글쓴이 이호택
사단법인 피난처(Refuge pNan) 대표다. 1994년부터 외국인노동자, 탈북자, 난민 지원 활동을 해 오고 있다. 서울대학교 법대 학부(1983) 및 동 대학원 석사(1985)를 졸업했고, 현재 아세아연합신학대 신학대학원 목회학석사(M.Div.) 과정에 재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