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는 콘스탄티누스 11세 팔라이올로고스(Constantine XI Palaiologos)이다. 그는 1449년부터 1453년까지 재위했으며, 동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로서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2세 의해 함락될 때까지 제국을 이끌었지만, 동로마 제국이 역사에서 살아지는 현장의 장본인이기도 하다.
콘스탄티누스 11세는 1405년 2월 8일에 태어났으며, 팔라이올로고스 왕조 출신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황제 마누엘 2세 팔라이올로고스였고, 어머니는 헬레나 드라가스(Helena Dragaš)였다. 콘스탄티누스는 제국이 쇠퇴하는 시기에 즉위하게 되었으며, 그의 재위 기간은 오스만 제국(터키/튀르기예)의 위협이 극에 달한 시기였다.
콘스탄티누스 11세는 즉위 당시 이미 동로마 제국의 상황이 매우 어려운 상태였다. 제국은 콘스탄티노플과 그 주변 지역만을 통치하고 있었으며, 나머지 대부분의 영토는 이미 오스만 제국에 의해 점령된 상태였다.
1453년,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2세가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하기 위해 대규모 군대를 이끌고 침공했다. 콘스탄티누스 11세는 소수의 병력으로 도시를 방어하려 했으나,
오스만 제국의 압도적인 군사력과 당시 초대형 대포 등 신무기를 앞세운 공격 앞에서 결국 성벽이 뚫리게 되었다. 말 수십 마리가 끌어야 하는 무게의 초대형 대포 개발자(부·자)는 헝거리 출신의 기독교도였다.
1453년 4월 12일, 모든 준비를 완료한 오스만 제국(이하 오스만)의 술탄 메흐멧 2세는 공격 명령을 하달하였다. 그가 점령하고자 했던 목표는 비잔틴 제국(동로마, 이하 비잔틴)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이었다.
서기 330년, 당시 로마 황제였던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지시에 의해 만들어진 이 도시는 395년 로마 제국이 동서로 분리되고 476년 서로마가 멸망한 이후에도 천 년이 넘게 기독교 문화권의 중심지를 자부한 고도(古都)였다.
비잔틴은 유스티니아누스 대제가 통치하던 6세기 중반의 전성기도 있었지만, 제국이라는 호칭과 달리 주변 세력의 득세에 밀려 주로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하는 발칸 반도 남쪽 일대에서만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대 로마의 전통과 영화를 승계하였고 모든 문화와 문명이 교차하는 집결지이다 보니 당대 세계 최대의 도시로 명성을 날렸다. 한마디로 제국의 전부라 할 수 있는 요충지였다.
콘스탄티누스 11세는 최후의 순간까지 도시를 방어하기 위해 싸웠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그는 마지막 전투에서 자신의 황제 복장을 벗고 일반 병사로서 싸우다 전사했다. 그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이로 인해 그는 전설적인 인물로 남게 되었다.
콘스탄티누스 11세는 동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로서, 제국의 영광과 몰락을 상징하는 인물로 기억된다. 그의 죽음은 비잔티움 제국의 공식적인 끝을 의미했지만, 그의 용기와 희생은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습니다.
동로마 제국의 성벽, 유적
동로마 제국(비잔티움 제국)의 성벽은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현재의 이스탄불)을 방어하기 위해 지어진 견고하고 복잡한 구조물로, 그중에서도 테오도시우스 성벽(Theodosian Walls)이 가장 유명하다. 이 성벽은 동로마 제국이 외부 침입으로부터 오랜 기간 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 중세 시기에서 가장 인상적인 방어 구조물로 평가되었다.
테오도시우스 성벽의 특징복합 구조, 테오도시우스 성벽은 여러 층으로 이루어져 있어 이중 혹은 삼중 방어 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 성벽은 외벽, 내벽, 그리고 그 사이의 해자(해자(垓子, moat)는 적의 접근을 막기 위하여 성의 둘레에 땅을 파 물을 채워 놓은 시설)로 구성되어 있었다.
외벽은 높이가 약 8m이며, 내벽은 약 12m 정도로 더 높고 두꺼운 구조, 성벽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첨탑(탑)이 배치되어 있어 방어자가 성벽의 다양한 지점에서 적을 방어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각 탑은 병사들이 적을 공격할 수 있는 창구를 갖추고 있었고, 또한 발리스타와 같은 공성 무기를 배치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해자는(인공 강) 성벽 앞에는 깊은 해자가 있었으며, 적이 성벽에 접근하는 것을 방지했다. 해자는 물로 채워져 있거나 마른 해자 형태로 남아 적의 진입을 어렵게 했다. 테오도시우스 성벽은 여러 차례의 지진과 전쟁으로 인해 손상되었지만, 끊임없이 보수되고 재건되었다. 그 결과, 이 성벽은 약 1,000년 동안 제국을 지켜낼 수 있었다.
콘스탄티노플의 성벽은 1453년 오스만 제국의 메흐메트 2세에 의해 함락될 때까지 수많은 공격으로부터 도시를 보호했다. 오스만 제국은 대포와 같은 화약 무기를 이용해 성벽을 파괴했고, 이것이 결국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는 계기가 되었다.
동로마 제국의 성벽은 그 방어 능력과 구조적 아름다움 덕분에 중세 유럽의 다른 성벽과 비교할 수 없는 중요한 유산으로 현재(2024년)도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