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칼럼> 10년, 20년 신앙생활 해도 똑같은 이유. 최원호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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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칼럼> 10년, 20년 신앙생활 해도 똑같은 이유. 최원호 박사
  • 김진영 기자
  • 승인 2017.05.04 08: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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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등감을 극복하려면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만나야 한다. ⓒAaron Burden
▲ 최원호 박사

열등감, 예수를 만나다’ 연재시리즈(9) 성장해야 할 아이가 성장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가슴이 아프고 애처로울까. 저성장증으로 나이는 25살이지만 나이에 비해 여전히 키는 110에 불과하다. 초등학교 때 성장하다 말고 멈춰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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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특이한 병명처럼 성장 자체가 중단된 상태이다. 165 정도 되는 사람이 키 작은 아이를 이상한 눈초리로 힐끔힐끔 쳐다보지만, 상대방을 내려 볼 때는 이미 내가 더 크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넘치는 자신감이다.

그러다가 180인 사람을 만나는 순간, 초라해진 모습에 고개를 숙인다. 나는 왜 이렇게 키가 작은 것일까.... 좀 전에 느꼈던 우월감은 사라지고 순간 열등의식으로 바뀌어버린다. 그러다가 뜬금없이 키 작은 부모님을 원망하고 엄마의 탓으로 돌린다. 그래도 다행히 정신 차리고 보니,

구세주를 만난 듯 키높이 구두의 도움이 나를 살렸다. 요즈음 성형의 도움이 대세이다. 사람이 달라 보이는 놀라움에 외모에 대한 열등감은 많이 사라진 듯하지만, 정작 마음의 열등감은 병적으로 더 깊어가고 있다.

세상에는 나보다 잘난 사람이 천지다. 많아도 너무 많으며 감히 비교할 수조차 없는 비교의 대상들이다. 돈으로 치면 돈 많은 사람들뿐이다. 돈벼락에 맞아 죽더라도 돈벼락 맞고 싶다고 로또 복권에 당첨됐다가 죽은 사람도 있다.

지식으로 잘난 사람들, 박사, 의사, 교수 등 온갖 전문직 종사자들은 말이면 말, 글이면 글, 술이면 술, 노래면 노래, 오락이면 오락, 골프면 골프, 세상에 뭐하나 빠지는 것이 없는 팔방미인들이다. 거기다 인맥으로는 남들은 일곱이나 여덟 단계를 거쳐야 청와대까지 연결될지 말지 하는 것을, 두세 사람만 거치면 청와대를 접수하고 남을 정도다.

세상이 변해도 얼마나 변했는지 세상만 변한 것이 아니다. 교회도 변해도 너무 변한 것을 교회 가면 알 수 있다. 한눈에 보인다. 주차장에 들어서면 웬만한 백화점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중대형 고급 세단들로 즐비하다. 초창기에 헐벗고 굶주리고 가난했던 자들이 예수를 잘 믿어 하나님의 은혜로 축복받은 간증 전시장이다. 당연히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헐벗고 굶주리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이 예배당으로 모이는 시대는 이미 지난 것 같다. 대부분 목회자도 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왕이면 돈 많은 부자이거나, 전문직 종사자 또는 권력자들이 오는 것을 더 좋아하고, 전도의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거꾸로 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이미 목회자가 돈에 대한, 명예에 대한, 권력에 대한 열등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대리 만족하려는 세상에 물든 목회자이기 때문이다. 교인들이 세상에서 온갖 열등의식에 시달리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말씀과 기도로 응답받도록 해줘야 할 책임을 목회자들이 망각했기 때문이다.

마귀들이 제일 극단적으로 사용하는 영적 무기가 열등감이다. 목회자는 오직 말씀으로 가르치고, 말씀을 전파하고, 기도 이외에 할 것이 없다. 신학이 전공이고 목회가 전공인데 왜 설교시간에 강대상에서 온갖 세상 학문을 인용하다 못해 심리학 강의를 하느냐이다. 영성인 성령과 말씀으로 회개의 눈물을 흘리게 만들 때, 교인들이 열등감이 사라지고 열등감을 극복할 영적인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목회자의 열등감을 감추고 세상의 지식과 세상의 명예로 그럴듯하게 가리고 싶은 것은 아닐까 묻고 싶다. 영성 하나만으로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온갖 세상 지식과 학위들로 가득하다. 설교인지 개그인지도 모르게 뒤죽박죽인 데다가 구원의 본질은 꺼내지도 않는다.

그러니 교인들은 10년 신앙생활 하나 20년 신앙생활 하나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이 똑같다. 좋게 표현하면 똑같은 것이고, 부정적으로 표현하면 성장하지 않은 것이다. 성장이 멈추고 더 이상 자라지 않았다. 오히려 열등감이 성장하여 시기와 질투와 분노에 사로잡혀 살고,

당 짓는 일에 열심이다. 남이 잘하는 것을 못 보고, 남이 나보다 헌신하고 봉사하는 것은 용서가 안 된다. 초신자가 목회자에게 더 잘 보이거나 목회자가 다른 사람을 더 칭찬해 주는 순간 바로 시험에 든다. 우리 자신은 어떤 모습인지 스스로 점검해보기 원한다. 최원호 서울한영대학교 겸임교수, <열등감, 예수를 만나다 저자> 본사협약  크리스천 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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