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장 통합, 한국교회 북방선교 역사 고찰.
예장 통합(총회장 정영택 목사) 역사위원회(위원장 김동운 목사)가 16일 서울 종로5가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 소강당에서 ‘한국교회 북방선교 역사 고찰 -장로교를 중심으로’를 주제로 제6회 한국교회사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강사로는 서굉일 명예교수(한신대), 정경호 은퇴교수(영남신대), 정호상(블라디보스토크 장로회신학교 이사) 황기식(한국장로교회역사학회 수석부회장) 목사가, 논찬자로는 박형신 교수(남서울대)가 참여했다.
먼저 ‘북간도 지역 민족 교회의 역사와 그 의의’를 제목으로 강연한 서굉일 교수는 “두만강 건너 북간도는 러시아 연해주와 더불어 한민족의 활동 무대였고, 한말에는 함경도 변경민들의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 위한 곳이었다”며 “나아가 일제 침략과 이은 식민지 지배 시기에는 국권 회복과 조국 광복을 위한 민족 해방 투쟁의 중심 무대가 된 곳이다. 그러므로 이 지역에 전파된 교회는 민족주의 교회로 발전했다”고 했다.
서 교수는 또 “북간도는 수많은 목회자들이 간도 시베리아 남부만주 선교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교지”라며 “일제 강점기 북간도 교회를 이끌었던 김약연 목사는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 신앙을 지켰으며, 믿음과 민족 사랑을 함께하다가 그 유해 또한 북간도 명동 땅에 묻혀 있다”고 했다. 아울러 그는 “우리는 용정을 찾을 때마다 일제 강점기 북간도 교회가 유랑민 같던 한인사회 이주민들을 섬겼던 그 뿌리들을 기억하면서, 오늘날 두만강변에 흩어져 있는 탈북민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선교의 사명으로 삼아 이를 적극적으로 감당했으면 한다”고 전했다.
이어 정경호 교수는 ‘명동촌의 민족신앙과 신앙공동체 이야기 -김약연 목사의 명동촌 마을을 중심으로’를 제목으로 발표했다. 정 교수는 “김약연의 명동교회, 명동학교, 명동촌은 한국적인 주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한국적인 기독교, 즉 십자가와 태극기를 짊어지고, 이웃과 사회 나아가 민족 구국을 실천하려 했던 이상적인 기독교 공동체이자 대안적인 교회이며 사회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 교수는 “오늘날 방향을 잃어버린 우리 한국교회가 110여 년 전 명동촌의 살아 꿈틀거리는 신앙공동체 이야기를 통해 새롭게 배워나가야 할 것이며, 그 소중한 뜻을 오늘에 이어가야만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다음으로 정호상 목사는 ‘러시아(연해주)에서 한국 장로교회의 시작, 1909~1937년’을 제목으로 강연했다. 정 목사는 “한국교회의 러시아 지역 선교역사를 살펴볼 때, 1909년 최관흘 목사를 파송한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며 “한국교회가 러시아 전역에서 선교한 것은 1989년 개방 이후이고, 그 전 상황은 주로 연해주와 야간의 하바롭스크, 블라고베센스크와 이르쿠추크가 전부였다”고 했다.
정 목사는 “최관흘은 1877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나 1899년 정주군 곽산읍교회 장로가 됐고, 평양에서 선교사 마포삼열이 시작한 대한예수교장로회 신학교를 입학해 1909년 졸업했다”며 “목사 안수를 받고 최관흘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선교사로 파송이 결정된다. 그는 이후 2달이 채 되기 전에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해 러시아 내무성에 장로교회 설립 청원서를 제출한다”고 했다. 그는 “이 설립 청원서는 러시아 당국에 보존돼 있는 문서들 중, 처음으로 장로교회가 등장한 것을 증명하는 문서”라며 “이 청원서에 의하면 이미 60명이 블라디보스토크 한인촌에 모이고 있었고, 최관흘이 이들에게 장로교회를 설립하겠다는 청원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끝으로 ‘간도, 만주 연해주 지역 한국장로교 노회 형성사’를 제목으로 강연한 황기식 목사는 “초대 한국 장로교회의 북방선교는 힘이 있었고, 열정이 있었으며 사명감이 투철했다”며 “한국교회는 관련 자료를 모으고 살을 입혀, 100년 전 활동했던 믿음의 선조들이 만들었던 선교의 역사를 복원해 한국교회 믿음의 후손들에게 자산으로 남겨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