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안정제와 수면제 없인 하루를 넘기기 어려운 우울증 환자가 있었습니다. 약물치료, 한방치료, 병원치료 안해본 것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어떤 치료나 처방도 불안, 초조, 불면증을 치료하지 못했습니다. 길은 하나, 죽기로 했습니다. 죽기로 결정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3개월 여 고민 끝에 결정했습니다.
막상 죽기로 결정은 했지만 걸리는 문제가 한 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언제 죽느냐, 어디서 죽느냐, 어떻게 죽느냐가 문제였습니다. 한강 물에 뛰어내릴 것인가? 달리는 차에 뛰어들 것인가? 수면제를 먹을 것인가? 제일 손쉬운 것이 수면제 먹고 죽는 것이라 결론짓고 이 약국 저 약국 돌며 수면제를 모았습니다.
어디서 죽느냐 도 문제였습니다. 안방, 화장실, 서울역, 남산공원? 여기저기 생각하다 동네 교회로 정했습니다. 거기서 죽으면 뒤처리를 잘 해줄 것 같았습니다. 언제 죽을 것인가? 그건 때를 봐가며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12월 말이 가까워 오는 어느 날, 갑자기 죽고 싶은 생각이 들어 집을 나섰습니다. 평소 눈여겨 둔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본당 안은 불이 꺼져있었습니다. 잘됐다 싶어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그녀는 소스라쳐 놀랐습니다.
통곡소리, 악쓰는 소리, 외치는 소리가 어둔 공간을 메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기처럼 한 많고 서럽고 죽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악 쓰며 울고 있는가보다 라고 생각하며 빈자리에 앉았습니다.
그 날 그 교회는 성탄절을 맞는 "특별철야기도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얼마 후 불이 켜지고 찬송과 말씀이 이어졌습니다. 그날 저녁 그녀는 거기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죽을 수도 죽어서도 안 되는 이유를 발견했습니다. 주님을 만났습니다. 다시 불이 꺼지고 통성기도가 시작됐습니다. 실컷 울었습니다.
고였던 눈물샘이 바닥날 때까지 울었습니다. 그리고 평안과 삶의 의미를 찾았습니다. 지금 그녀는 교회 집사가 되었고 새신자부에서 상담역을 맡고 있습니다.
작가 게오르규는 “하나님의 인간적 얼굴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기 위해 예수그리스도가 인간으로 태어났다”고 했습니다.
평강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너희에게 평안을 주노라”고 하셨습니다. 요순시대도 잠깐이고, 태평성세도 순간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평강은 영원에 맞닿는 길고 긴 평안입니다. 반짝 평안이 아닙니다. 영원한 평안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그 평안을 소유한 사람들이며 그 평안을 나누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네 삶의 현장을 평안의 동산으로 만드십시다. 가정과 교회 그리고 국가공동체를 향해 평화의 교향악을 연주합시다. 성탄절에 평안을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