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소소한 소대사'
‘바벨론은 국명 겸 도시의 이름으로 로마인들이 부르던 갈대아 인의 영토(렘 24:5, 25:2, 겔12:13).
(1) 함의 손자 니므릇이 건설한 나라로서 시날 평원인듯하다(창 10:10,11:2).
(2) 느부갓네살 왕 때에 국력이 강성하여 유대국을 멸하고 유대인을 포로로 잡아갔다(왕하25:8-12).
(3) 다니엘과 세 청년이 그때에 왕궁에서 시종하였다(단 1:7).
바벨론 제국 국토는 장360마일, 광90마일의 대평원으로 동쪽은 티그리스강, 서쪽는 아라비아 사막, 남쪽은 페르샤 바다, 북쪽은 앗수르국으로 땅이 비옥하고, 기후가 열대성에 속하여 1년 2회 농산물을 수확을 한다. 바벨론성은 주위 54마일, 높이 300척, 폭75척, 성곽은 2중, 성문은 100개인데 모두 금속 동으로 만들었다.
노아 홍수 후에 쌓은 바벨탑이 이곳에 있다.
바벨론 성 발굴
신바빌로니아의 수도인 바벨론 성이 현대 이라크 수도인 바그다드 남쪽 60마일 지점에서 발굴되었다. 1899년부터 1917년에 이르기까지 거의 20년간 로버트 콜더베이(Robert Koldewey)교수는 독일 동방학회의 사업으로 바벨론 성을 발굴했다.
이사야의 예언대로(사 13:20-21, 14:1; 렘 51:37) 지금은 폐허로 남아 있다. 오직 들짐승이 거기 엎드리고 부르짖는 짐승이 그 가옥에 충만하며 타조가 거기 깃들이며 들의 양이 거기서 뛸 것이며 그 궁성에는 시랑이 부르짖을 것이요 화려한 전에는 들개가 울 것이라(사 13:21, 22)
발굴 결과 바벨론 성의 규모는 내외 전장(全長)이 15마일 정도이고, 느부갓네살 이후의 전 도성의 둘레는 하궁에서 옛 왕궁까지 유프라테스강 전면을 포함해서 10마일 정도였다. 강 동편의 내성을 두른 2중 성벽은 바깥 것이 22피트, 안의 것은 12피트였다.
바벨론 전 성읍을 바깥으로 두른 성벽 역시 2중 성벽인데 바깥 것은 26피트, 안의 것은 24피트였다. 폐허 중에 제일 높은 부분이 이슈타 게이트로서 48피트 가량이다. 본래 성안에서 제일 높은 건축물은 300피트 가량의 신전 탑 '에테메난키'(Etemenanki)였다.
그 폐허에서는 느부갓네살 왕의 이름과 직위가 새겨진 평방 12인치 반의 벽돌이 발굴되었다. 바렐론 성의 가장 높은 건물은 주문(主門)인 이슈타 게이트인데 그 성문의 벽돌에는 바벨론을 상징하는 용의 머리, 사자의 몸, 독수리 뒷발톱을 가진 복합 짐승이 문각 되어 있어 다니엘 7장의 표상을 실감나게 하고 있다.
다니엘의 세 동무가 던져졌던 풀무는 벽돌 굽는 가마였다. 원추형으로 생긴 이 가마 속에 진흙 벽돌을 쌓았고, 연료는 원유와 짚 또는 겨를 섞어 사용했다. 다니엘 3장에서 분노한 왕이 7배나 뜨겁게 하라던 것은 원유가 섞인 연료를 7배만 더 넣으면 된다.
또 우상이 세워졌던 '두라 평지'(단 3:1)는 지금의 힐라 언덕 5마일 아래에서 유프라테스 강으로 들어가는 한 지류의 입구에 있는 '나르 두라'(Nahr Dura)이다.
다니엘 6장의 사자굴은 고대 제국의 왕들이 스포츠로 사자 사냥을 위하여 사자를 가둬 두었던 곳이다. 이와 같은 사자굴은 앗시리아 여러 곳에서 발굴되었다.
사자굴을 인봉할 때는 그 입구를 돌로 맞고 그 둘레를 젖은 석회로 바른 뒤 원통 모양으로 문각된 도장을 굴려서 직사각형의 인상(印象)을 남겨 아무도 뜯지 못하게 했다.
다니엘 5장에서 벨사살이 마지막 잔치를 했던 큰 홀은 느부갓네살이 지은 남궁에 있다. 그곳 중앙에는 보좌가 있는 넓은 방이 있는데 길이가 173피트, 넓이 57피트, 높이 66피트이다. (신계훈, 조대연, 고고학과 성서 배경, 134-140 참조).
글 출처: 한국컴퓨터선교회-KCM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