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위한 요한계시록. (3) 장신대 김태섭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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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위한 요한계시록. (3) 장신대 김태섭 교수
  • 박동현 기자
  • 승인 2024.08.17 19: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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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으로 산다는 것은 기존 직업생활과 인간관계 유지에 큰 어려움을 자초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런 사회적·경제적 고립보다 소아시아 성도들에게 더 치명적인 위협은 정치적 박해였다. 주후 1세기 전후에 아우구스투스(재위 27 BC – AD 14)를 필두로 시작된 로마 황제들의 신격화는 특별히 소아시아 지역에서 성행하였다.
예수재림 상상 이미지 

지난 호부터 우리는 요한계시록이 기록될 당시, 소아시아 성도들이 직면해야 했던 종교적 도전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요한계시록 2-3장에서 예수님은 일곱 교회 성도들에게 ‘이겨야 한다!’고 권면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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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이긴다’(νικάω)라는 것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 죽기까지 생명을 아끼지 않는 것’을 뜻한다(계12:11). 당시 아시아 성도들은 죽기까지 싸워 이겨야 할 큰 도전에 직면했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종교혼합주의였다.

지난 호에서 상술한 바와 같이, 그리스-로마의 신화를 믿고, 도시마다 수호신을 신봉하던 다신교 사회에서 유일신앙을 지키는 기독교 인들은 적지 않은 사회적 지탄에 직면해야 했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적 고립뿐만 아니라, 당시 성도들은 적잖은 경제적 불이익과 정치적 박해도 감수해야만 했다.

                                요한계시록의 상황(context) : 종교혼합주의의 도전

(2)당시 소아시아 도시안에는 여러 형태의 ‘자발적 결사’(콜레기아, collegia)가 있었다. 그 가운데 가장 응집력과 결속력이 강했던 것은 ‘동종직업 결사’였다. 그리고 각 결사 조직마다 자신들의 직업에 따른 수호신이 있었다.

예를 들어 ‘대장장이 콜레기아’의 수호신은 ‘헤파이스토스’였고, 배를 타는 ‘선원 콜레기아’의 수호신은 ‘포세이돈’이었다. 이들은 함께 모여서 제사를 지내곤 하였는데, 조직원 중에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은 더 이상 제사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래서 출항을 앞두고 무사 귀환과 만선(滿船)을 기원하며 선원들이 포세이돈에게 제사를 올리는데, 이 제사를 거부하는 기독교인들을 배에 태우는 것은 매우 거북하고 불안한 일이었다. 대장장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대장장이는 불을 다루는 위험한 직업이기 때문에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제사를 헤파이스토스에게 올리곤 했다.

그런데 이것을 미신(迷信)이라 치부하고 동참하지 않는 기독교인들과 동업하는 일은 이교도들에게 매우 불쾌하고 불길한 일이 되는 것이다. 결국 기독교인들은 순수한 신앙을 유지하려면 직장에서 소외당하거나 거래처가 끊기는 경제적 불이익도 감수해야 했다.

이처럼 당시에 기독교인으로 산다는 것은 기존 직업생활과 인간관계 유지에 큰 어려움을 자초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런 사회적·경제적 고립보다 소아시아 성도들에게 더 치명적인 위협은 정치적 박해였다. 주후 1세기 전후에 아우구스투스(재위 27 BC – AD 14)를 필두로 시작된 로마 황제들의 신격화는 특별히 소아시아 지역에서 성행하였다.

각 도시와 지역 유지 (有志)들은 자신들의 충성을 과시하여 황제의 정치·경제적 성은(聖恩)을 입고자 노력했는데, 그 대표적인 방법이 바로 ‘황제 숭배’(imperial cult)였다. 당시 로마 황제와 원로원은 황제를 위해 신전을 건립한 도시에 ‘네오코로스’(νεώκoρος)라는 존칭을 하사하였는데, 이 타이틀을 가장 먼저 거머쥔 도시가 바로 에베소였다.

이후 소아시아 도시들은 이 존칭을 하사받기 위해 황제를 위한 신전 건립에 경쟁적으로 뛰어들 게 된다. 온 도시가 총력을 기울여 황제를 위한 신전을 짓고 제사를 드리는데, 기독교인들만 미온적이거나 참여하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참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앞선 사회적·경제적 고립과 달리, 황제 숭배를 거부하는 것은 ‘반역죄’로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치명적인 위협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순결한 신앙을 유지하는 것은 녹록지 않은 도전이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당시 소아시아 교회 안에는 순수한 신앙을 지키려는 자들도 있었지만,

적당히 종교적 타협을 종용하는 자들, 니골라 당, 발람의 교훈을 따르는 자 들, 이세벨의 무리도 등장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계시록은 소아시아 성도들에게 죽기까지 싸워 이겨야 한다고 격려하는 것이다.

특별히 계시록은 당시 성도들에게 가장 치명적이었던 위협, 곧 황제 숭배에 대해 더 자세 히 부연한다. 계시록 12장을 보면, 하늘의 전쟁에서 패배한 용(龍, 옛뱀, 사탄)이 땅으로 내어 쫓기고, 분풀이 할 대상으로 교회 성도들을 주목한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계12:17). 이어진 계시록 13장에서 용은 여자의 후손 곧 교회의 성도들을 박해하고자 자신의 대리자를 내세운다(계13:1-10).

이 용의 대리자로 등장하는 짐승이 그 유명한 666짐승이다: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계13:17-18).

이 666 짐승의 정체에 대해 많은 주장이 제기되었다. 천주교 교황, 미국 레이건 대통령, 나치 히틀러, 빌 게이츠, 컴퓨터 바코드, 베리칩, 적그리스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해석들이 있었다. 그렇다면 666 짐승은 누 구를 또는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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