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국양제' 약속, 중국이 점점 지키지 않아
'우리도 민주화 혁명 할 수 있구나' 경험 중
WCC, 왜 홍콩 민주화에 한 마디 못하나?
“홍콩은 자유로운 경제국가였다. 홍콩이 오늘날과 같은 전쟁터가 될 줄 그 누가 알았겠는가? 만약 한국에서 이같은 일이 생긴다면, 바로 여러분들이 시위에 나섰을 것이다. 그저 남의 나라의 일이 아니다”
최근 감리교신학대학교 학생들이 ‘홍콩의 민주주의를 위한 떼제기도회’를 열었다. 홍콩의 민주화운동을 지지하며 중보하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홍콩인 파니(Fanny·본명 Huifan Chung) 씨가 한국어로 홍콩 시위 현장을 증언했다.
홍콩 기독학생회(Student Christian Movement, SCM) 출신인 파니 씨는 해외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사회복지학 전공자로서 해외 NGO에 관심이 많았고, 한국 의 한 NGO에서 1년 동안 활동하기도 했다.
2013년 한국에서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가 열렸을 때도 봉사자로 섬겼다. 인턴십을 마친 후, 홍콩으로 돌아갔다가 2014년 한국 기독학생회총연맹(KCSF)의 초청을 받아 지금까지 국제부 간사로 활동 중이다.
그녀는 지난 11월 홍콩 경찰이 시위 근거지였던 중문대에 이어 이공대를 진압할 때, 한국, 홍콩, 대만의 기독교인 학생들과 연대해 홍콩 민주화를 지지하는 성명을 냈다. 본지는 최근 그녀를 만나 홍콩인이 생각하는 홍콩 민주화 운동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았다.
다음은 일문일답.-현재 홍콩의 상황은 어떠한가?
“지난 주말, 시위대가 합법적인 행진을 했다. 이는 법적으로 허가를 받은 평화로운 시위였음에도 불구하고, 경찰 측이 이유없이 최루탄을 쐈다. 이들은 경찰이 주장하는 것처럼 폭도들이 아니었다. 시위자들은 허락된 시간과 장소에서 시위를 하는데도 최루탄을 쏜 것이다.
그래서 살짝 충돌이 있었다. 그래도 이는 전에 비하면 작은 일이다. 홍콩 사람들은 이미 최루탄에 익숙해졌다. 좋은 일은 아니지만 이제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 알기 때문에 무섭지 않다.
홍콩에서의 파업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12월에는 업종별 파업을 계획하고 있다. 이번 주에는 광고업계에서 파업을 한다. 17일부터 19일까지는 사회복지업계에서 파업을 계획하고 있다. (파업을) 언제까지 해야될 지 모르겠지만, 계속 싸워야 한다.
전통적으로 홍콩에서는 설이 되면 일주일간 야시장을 열고 축제와 같이 즐긴다. 그런데 올해 설에는 음식 외에 다른 물품의 판매가 금지됐다. 시위를 지지하는 상품들이 나올 수 있어서다. 그래서 민간 차원에서 설 야시장을 기획하고 있다. 시위를 지지하는 가게를 ‘노란가게’라고 한다.
구글맵에도 노란 색으로 표시된다. 이들은 시위대에게 물이나 음료수를 제공하거나 음식값을 할인해준다. 돈이 없고 집에도 가지 못하는 학생들을 지원해주기도 한다. 사실 시위를 지지하는 가게들은 전부 중·소규모이기 때문에 이러한 운동에 영향을 받는다. 이들도 힘들게 버티고 있다고 들었다. 민간 차원에서 이러한 가게들을 찾아가 소비하자는 운동도 일고 있다. 다양한 움직임들이 있다.”
-최근 구의원 선거에서 범민주파 의원들이 다수를 차지했다. 어떻게 보는가?
“구의원 선거에서 젊은 사람들이 많이 당선됐다. 내년 9월 선거까지 정말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지역 내 거주민들이 서로 상의하면서 지역을 민주적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민주 진영이 지역 내 얼마나 뿌리 깊이 들어갈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그 일을 제대로 해야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내년에 또 다시 바뀔 수 있다. 젊은이들은 경험이 부족하지만, 이 시대는 경험이 없는 것도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틀에 박히지 않고, 새롭게 도전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의 문제는 체제의 문제인데 구의원이 바뀐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겠나? 보수파가 자리를 빼앗긴 것일 뿐, 체제의 문제는 우리가 건드릴 수 없다.
따라서 큰 의미가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도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공대 안에서는 여전히 학생들이 싸우고 있다. 민주파 의원들은 당선된 다음날 학교 근처로 가서 이들을 지원했다. 5명의 대표들은 학교까지 찾아갔다. 이 싸움을 끝까지 해야하기 때문이다.”
-홍콩인들 안에 있는 경제적 불평등, 빈익빈부익부 심화 등으로 사회에 대한 불만이 쌓여 송환법 반대 시위로 폭발했다는 시각도 있다.
“경제적 불평등, 빈익빈부익부는 이번 민주화 운동의 근본적인 이유가 아니라고 본다. 외신에서 홍콩 사태를 다룰 때, 그 뿌리에 경제적인 불평등의 문제가 있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는 따로 다뤄야 하는 문제다.
물론 홍콩인들 안에 이러한 불만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이 자본주의 세계의 움직임이고 한국도 마찬가지다. 경제적인 영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더욱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민주화를 이루자는 것이다.
97년 영국이 홍콩을 중국에 반환할 때 일국양제에 대한 보장을 받았다. 홍콩의 기본적인 법 체계는 그대로 유지해야 하는데, 중국이 점점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젊은이들은 민주, 자유, 개방 등을 외치면서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했다.
그런데 그것을 개선한다며 2014년 8월 31일 중국이 내놓은 결정은 중국의 추천을 거친 후보들을 뽑으라는 수준이었다. 그 때부터 대학생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학자, 변호사들도 동참했다. 그렇게 79일 동안 우산혁명이 진행됐고, 조슈아 웡 같은 정치 아이돌도 등장했다.
그런데 이 혁명이 끝난 후 젊은 활동가들이 정말 많이 체포됐고 5년 동안 민주화 세력은 조용하게 지냈다. 20대 초반 친구들이 감옥에 갇히는 등 많은 좌절을 느꼈고 잡히지 않은 친구들은 정치 공부를 하거나, 실제로 정당을 만들어 지역별로 활동했다.
오늘날의 시위가 '범죄인 인도법'(송환법) 하나 때문에 이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송환법이 발의됐을 때, 첫 주말에 100만 명이 시위에 나섰다. 이후 법안이 2심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시위가 3주째 계속되자 경찰은 이를 폭동으로 규정했고, 200만 명의 시민들이 나왔다.
이때부터 운동의 방향이 단순히 송환법 철폐가 아닌 경찰에 대항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도대체 100만 명의 시민들이 나와도 안 바뀌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직접 뽑은 이들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책임이 없었던 것이다.
이제 모든 사람들이 깨어서 ‘우산혁명을 이어서 가야하는구나’ 생각하게 됐다. 물론 중간에 경제적인 문제를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이유 때문에 민주화 운동이 지금까지 계속되는 것은 아니다. 영국이 홍콩을 중국에 반환한 이후부터 지금의 시점까지 이어서 보아야 한다. 우산혁명부터 지금까지 모든 홍콩인들, 심지어 민주화 운동을 오래 해왔던 선배들도 ‘아 홍콩인들도 이렇게 민주화 혁명을 할 수 있구나’라는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
특히 경찰의 탄압을 받고 있는 이들은 20대 젊은 친구들이다. 모두 97년 이후 태어나 실제로 식민지를 경험하지 못한 이들이다. 그런데 왜 이들이 이렇게 시위에 나서게 됐나? 이들은 진짜 민주화를 원하는 친구들이다.
외부에서 돈 때문에 그렇다는 이야기들이 많다. 그것은 홍콩의 문제를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이다. 돈 문제라고 생각하면 돈으로 풀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절대 그런 문제가 아니다.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이 운동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앞으로 직선제가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보는가? 더 나아가 홍콩의 독립을 원하는 목소리도 있다.
“단기적으로든, 장기적으로든 직선제가 현실화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홍콩은 초기 단계에 있다. 직선제를 이렇게까지 강력히 요구하기 시작한 것은 5~6년 밖에 되지 않았다. 송환법은 이미 10월에 철회했다. 이제 경찰 폭력의 문제가 남았다.
경찰은 지하철에서 무고한 시민들에게까지 폭력을 행사했다. 시위 현장 뿐 아니라 주거단지에서도 최루탄이 터졌다. 원래 정치에 관심이 없던 시민들까지 이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다. 경찰 폭력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를 하지 않는다면, 이 운동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또 폭동죄로 체포된 친구들을 석방하지 않으면 젊은이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주변 친구들이 다 잡혀가기 때문이다. 지금 10~20대 친구들이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기본적인 5대 요구를 관철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그 가운데 직선제도 포함돼 있다.
‘광복 홍콩, 시대 혁명’ 이라는 구호가 있다. 한국인들에게 광복은 독립을 의미하지만, 홍콩 사람들에게 광복은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이 아닌 일국양제로 돌아가자는 의미다. 즉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운동이 진행된 6개월 만을 보면, 미래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현재 제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금의 10~20대가 20년 이후 홍콩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30대 친구들까지는 중국이 일국양제를 꼭 지켜줄 것을 원하고 있지만, 지금 10~20대 친구들을 보면, 더 이상 일국양제에 대한 약속을 믿지 못하는 모습이다. 이들이 '진짜 홍콩의 독립을 원하는 것인가'에 대한 대답은 일단 공백으로 남겨야 할 것 같다.”
-홍콩 시위에 대한 세계 교회들의 입장은 어떠한가?
“대만 장로교회가 정말 열심히 지지를 보내고 있다. 대만 장로교회에서 ‘광복홍콩 시대혁명’이 적힌 스티커도 만들어서 나눠주었다. 작지만 정말 홍콩과 연대하고 있다. 지난 6개월 동안 대만이 홍콩의 변화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온 대만이 열심히 홍콩을 지지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덩달아 대만 총통의 지지율도 올랐다. 이들 안에는 ‘오늘의 홍콩이 내일의 대만이다’라는 두려움이 있다.
반면, WCC나 큰 단체들은 홍콩 시위에 대해서 한마디 성명도 내지 않았다. 한국 정치계에서도 말을 못하고 있고, 그나마 한국의 NCCK에서 두 차례 성명을 발표했다. 이후 이 문제를 인권센터 쪽으로 넘겼다. 홍콩의 NCC는 중국 눈치를 보면서 애매한 입장문을 냈다.
최근 WCC의 트베이트 총무가 방한을 했다. 그가 정의와 평화와 관련된 강의를 하는데, 아직 이공대에 갇혀 있는 학생들이 생각나면서 마음 속이 너무 복잡하고 힘들었다. 정치적인 문제라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그런데 인권 측면에서조차 한 마디도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똑같은 인권 침해 문제가 아프리카에서 발생하면 WCC의 성명도 빨리 나온다. 한국 민주화 운동의 경우, WCC가 얼마나 힘있게 도와줬나? 그런데 왜 홍콩의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못하는가?
지금은 대만 밖에 없지만 개별적으로 사회적 선교를 하는 단체들도 홍콩을 많이 도와주고 있다. 신학교 학생들이 스스로 홍콩을 위해 기도한 경우는 감신대 학생들이 처음이었다. 이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고 의미도 많다. 이후 숭실대 학생들도 홍콩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서 찾아왔다.
홍콩의 정치 상황이나 맥락 등이 단순하지 않기 때문에 설명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그들은 모두 97년 이후 태어난 민주화 세대이고 저는 식민지에서 자란 세대인데, 그들이 ‘홍콩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이번 시위도 결국 경제 때문에 일어난 줄 알고 있었다’고 말하더라. 이러한 반응들이 너무 신기했다.
민주화 운동은 젊은 사람들한테 지지를 많이 받아야 하기 때문에 이야기를 많이 해주고 싶다. 그래서 감신대에서도 ‘만약 여기가 홍콩이면 당신들이 다 나가서 싸울 수도 있다. 홍콩의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강조한 것이다.” 출처 : http://www.christiantoday.co.kr/news/3271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