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미술의 거장 미켈란젤로가 그린 첫 그림이 뭔지 아는가? 페친인 이은화 교수를 통해 좀 전에 알게 된 사실이다. 악마의 공격으로 고통 받는 성 안토니우스를 묘사한 아래 그림이다. 저렇게 탁월한 그림을 미켈란젤로가 몇 살에 그렸는지 아는가? 놀랍게도 12세 무렵에 그렸다고 한다.
고작 열두 살밖에 안 된 초등학교 6학년 나이의 어린이가 어떻게 저토록 탁월한 솜씨로 자신의 주제를 표현할 수 있었을까?
역시 천재는 타고나는가 보다. 미켈란젤로는 스스로를 조각가로 여겼지만, 초기에는 화가로 훈련받았다. 13세 때 피렌체의 유명 화가 도메니코 기를란다요의 공방에 들어가 회화를 배웠으나 곧 스승을 능가한다. 이 그림은 그가 공방에 들어가기 직전에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성 안토니우스는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 모든 재산을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눠주고 사막으로 떠나 35년 동안 금욕적인 은둔 생활을 한 3세기 이집트의 수도사다.
수행에는 언제나 고난과 유혹이 따르는 법. 악마들이 나타나 그를 유혹하고 위협했는데, 화가는 이 장면을 포착해 그렸다.
사실 이 그림은 독일 판화가 마르틴 숀가우어의 흑백 판화를 모방한 것이다. 그렇다고 그대로 베낀 건 아니다. 창조는 모방에서 시작되듯, 어린 화가는 자신의 생각을 반영해 원본을 변형하고 새로운 이미지를 추가해 자기만의 독창적인 작품으로 재창조했다.
피카소도 그렇고 모차르트도 그렇고, 다들 모방에서 출발하여 자신만의 창작으로 이어졌음을 본다. 모방을 무시하거나 죄악시 하는 건 잘못이다. 남의 작품을 그대로 베끼는 표절은 문제가 되지만, 모방은 창작을 위한 발판으로 환영해야 할 소중한 자산이다.
오늘날 설교자들의 표절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 이 때에 설교자들도 자신이 배울 만한 모범 설교자의 설교원고나 설교의 전달을 눈여겨 관찰하고 배우면 유익하리라 생각한다.
미켈란젤로가 그린 저 그림 속에 나오는 피렌체 아르노강 계곡을 닮은 아래 풍경과 물고기를 닮은 괴물에 그려진 은빛 비늘은 원본에 없던 부분인데 첨가를 했다. 생동감 있는 리얼한 표현을 위해 소년은 수산시장에서 물고기를 관찰했다고 한다. ‘일물일어설'(一物一語設)을 주장한 플로베르(Gustave Flaubert)는 <보봐리 부인>(Madame Bovary)을 쓸 때 독약까지 맛보았다고 한다. 정확한 어휘 선택을 위해 얼마나 고심했는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설교자들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소중한 영혼들에게 하늘의 양식을 먹이는 비교할 수 없는 귀한 사명에 예술가들의 노력만큼도 최선을 다하지 못한다면 어찌 되겠는가?
미켈란젤로는 성인에 대해서도 더 단호한 모습으로 표현하려 애쓴 흔적이 다분하다. 팔과 옷자락이 잡아끌리고, 매질을 당하지만 성인은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다. 자신의 신앙과 신념을 절대 타협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실제로 이 성인은 담대한 용기로 악마를 물리쳤고, 존경받는 수도 생활의 선구자가 되었던 분이다. 고전 9:27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일평생 말씀 사역으로 수고해놓고선 정작 자신은 유혹에 빠져 버림을 당하는 일이 생긴다면 그보다 더 큰 불행은 없을 것이다.
엡 4:13-14도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나님을 믿고 아는 지식으로 충만한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라는 말씀이다.
일평생 살면서 유혹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유혹이 찾아올 때 환영하는 이도 있고 거부하는 이도 있지만, 대부분은 유혹의 손짓에 넘어간다. 갈대처럼 흔들리고 갈등하고 고뇌하니까 인간이다. 하지만 유혹과 회유와 협박에 넘어가서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죄를 범하고 마는 건 그리스도인의 도리가 아니다.
마귀가 온갖 종류의 얼굴로 우릴 유혹하려 들더라도 우리는 그 어떤 순간에도 단호한 정신으로 뿌리쳐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과 강한 신앙으로 말이다. 이것이 5세기 전 살았던 12살 천재 소년 미켈란젤로가 우리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아닐까.
필자 신성욱 교수는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설교학 교수이다.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에서 공부했음, University of Pretoria에서 공부했음, Calvin Theological Seminary에서 공부했음, 총신대 신학대학원에서 언어학 전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