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에즈운하는 10여 년간 공사로 1869년에 완공되었다. 유명한 작곡가인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는 수에즈운하 개통을 축하하기 위해 만든 곡이다. 곡 중 ‘개선행진곡’은 한 번쯤은 들어 봤을 법한 매우 친숙한 곡이다.
맨 땅에 이러한 거대한 구조물을 만들려면 천문학적인 돈이 든다.(1800년대 건설장비를 상상해 보면 요즘 사용하는 현대의 장비는 개발되기 전이다) 때문에 국가가 부자여야 하는데, 사실 수에즈 국토 주인인 이집트는 당시 부유한 국가가 아니었다.
첫 시작은 프-이집트 컨소시엄으로 시작했다. 프랑스 자본이 절반 이상, 이집트 정부가 절반 조금 안 되는 돈을 부담했다. 그런데 프랑스가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하면서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수에즈운하 개발 운영에서 손을 뗀다.
이때 그 기회를 잡은 나라가 강대국 영국이었다. 수에즈운하의 대주주가 된 영국은 아시아 진출 탄탄대로를 얻었다. 당시 영국은 많은 나라를 식민지배하고 있었다.(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 할 정도) 수에즈운하로 인해 아시아 식민지국 관리가 상당히 용이했으리라 생각된다. 수에즈운하가 없었다면, 아프리카 희망봉을 빙 돌아서 인도나 미얀마 등 식민지를 관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다른 역사는 러·일 전쟁이 있다. 러시아와 일본의 쓰시마 해전은 일본이 승리했다. 러시아는 이 싸움에서 수에즈운하를 이용하지 못했기에 전쟁 상황이 더 어려워 졌고 패전했다. 러시아가 만주의 자원을 착취하는 데 일본을 배제하자,
일본 함대는 뤼순항과 한국의 제물포에서 포격과 어뢰 공격을 가해 러시아 태평양 함대를 무력화시켰다. 이에 격노한 러시아는 발트 함대를 불러들여 보복에 나선다. 발트함대는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했다. 일본과의 전쟁을 위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함정을 수리하고 수병을 훈련시킬 기회를 얻고자 했다.
수에즈운하는 영국의 영향력이 막강한 때였고. 영국은 일본과 가까운 사이였다. 이로 인해 러시아는 수에즈운하를 통과하지 못했고,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약 200일 동안 3만km나 되는 대장정을 시작했다. 발트함대는 쓰시마 해협(일본)을 일본 몰래 빠져나간 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함정들이 수리되고 수병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을 때까지 일본 함대와 교전하고 싶지 않았지만, 일본 순양함에 적발됨에 따라 전쟁은 시작됐다.
러시아의 발트함대가 쓰시마에 도착하기까지 배에서 보낸 200여 일의 신시간. 러시아 수병들은 지칠 대로 지쳤다. 바로 전쟁터로 나온 일본 수병들과의 싸움이 똑같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수에즈막스'는 수에즈운하를 통과할 수 있는 화물선 최대 크기이고, '케이프사이즈'는 수에즈운하를 통과하기에는 배가 너무 커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케이프타운 남쪽에 위치한 곶(cape)인 희망봉을 돌아서 운항해야만 하는 선박 크기이다. 그 지명을 따서 케이프 사이즈(cape size)라고 이름 붙었다.
현재 수에즈운하는 이집트가 전권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된 동기는 이집트 민족주의 지도자의 역할이 컸다. 아스완댐 건설비용 마련이 계기였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나세르 대통령은 영국 손에 넘어갔던 수에즈운하를 1956년 일방적으로 국유화한다. 영국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전쟁이 일어났고 이스라엘과 프랑스, 영국은 한 편이 돼서 이집트를 공격했다.
이것이 2차 중동전쟁이다. 이집트가 전쟁에서 패하긴 했지만, 당시 소련과 미국의 영향으로 수에즈운하를 지켜냈고, 영국과 프랑스는 수에즈운하의 소유권을 완전히 상실한다. 이와 같이 수에즈운하는 역사적으로 여러 사건들로 주목을 받아온 곳이다.
2023년 스에즈 운하에서 MV글로리(MV Glory)호 가 이스마일리아주(州) 수에즈 운하 지역의 콴타라시 근처에서 좌초되었다. 문제가 된 <MV글로리호>는 그리스 선박업체인 프리메라가 소유한 길이 225m, 폭 32m 규모 화물선이다. 이 선박은 6만6000톤의 옥수수를 우크라이나에서 중국으로 나르기 위해 시속 8.5노트(약 16km)의 속도로 수에즈 운하를 이동하던 중 이날 오전 5시께 좌초됐다.
좌초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당시 이집트 북부 지역은 악천후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고로 이집트는 하루 158억 원의 손해를 봤고, 하루에 50여 대의 선박이 이곳을 통과하는데, 대기 중인 배들도 피해를 많이 봤다. 이들은 좌초한 컨테이너 선박의 소유주인 일본 ‘쇼에이기센’이나, 이 배를 장기 용선하는 대만 해운 업체 에버그린 측에 원인과 책임 소재 규명이 되는대로 손해배상을 요구할 것 같다. 보험을 들어 놨겠지만,
이 사고로 손해의 종류는 다양하다. 납기일을 놓친 해운업계도 있고, 부품을 제때 받지 못해서 생산 차질을 빚는 곳도 있다. 수천 마리의 동물이 배에 갇혀 폐사 위기에 처한 특이 경우도 있다. 중동 국가들은 이슬람식 도축 방식을 적용한 할랄로 음식을 만들기 위해 유럽에서 키운 동물을 살아있는 채로 선박을 통해 들여오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대부분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이동 시간만큼만 준비하다 보니, 10여 일이란 시간을 갇혀 있게 되면 문제가 발생한다.
또 좌초 사고로 우리나라의 일부 몇몇 주식 종목들이 널뛰기도 했다. 선박 좌초 초기에는 통행 불가 사태로 해운 운임이 인상될 거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해운주 주가 상승이 있었다. 그러나 사태가 장기화되자 도리어 악재가 됐다. 이유는 선박이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운항할 때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게 되면 수에즈운하를 통과할 때보다 거리와 시간이 길어지면서 선박운행 경비 등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는 점이 주가에 악영향을 미쳤다.
반면 조선주들은 사고 선박이 일본 조선업계 1위인 이마바리 조선소에서 건조됐다는 점 때문에 한국 조선사들이 반사이익을 기대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2008년 이후, 수에즈 운하의 관문이나 다름없는 아덴 만 일대에 지나가는 상선을 노리는 소말리아 해적들이 들끓고 있지만 운하를 통과하는 배들이 줄어들 기미는 없다. 운하를 이용하지 않고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가는 루트는 워낙 거리와 시간 면에서 손해가 막심하기 때문이다.
다만, 해적들이 더욱 기승을 부려 보험료 할증이나 보안업체 고용비용 같은 부가비용이 급증한다면 수에즈 운하 통행을 포기하는 선주들이 나타날 가능성은 늘 있다. 그러나 정작 최근에는 소말리아 해적의 활동이 위축된 반면에 서사하라 일대의 해적질이 급증하여 희망봉 우회가 반드시 안전한 루트가 아니게 되었다.
제3차 중동전쟁 직후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수에즈 운하가 폐쇄된 일이 있었는데 이때 세계의 해운업계와 무역업계가 부담한 추가비용은 당시 미국 달러 기준으로 매년 수십억 달러에 달했다. 현재의 달러 가치로 하면 매년 수백억 달러를 추가로 지출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래도 2009년 한 해 동안 여기를 통과한 배만 해도 22,183척에 달했고 통과료로 받은 돈만 해도 54억 1,000만 달러에 이른다. 척당 평균 통과비는 대략 25만 달러이다. 이는 이집트의 2009년 GDP 4,531억 달러에서 1.3%에 이른다. 과거에나 현재나 여전히 이집트의 돈줄인 셈이다.
지구 온난화가 진행되어 북극해의 얼음이 계속 줄어들자, 수에즈 운하나 말라카 해협을 거치지 않고 부산항에서 베링 해협과 북극해를 통과해 유럽까지 가는 북극항로를 타진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만약 얼음이 충분히 녹아 바닷길이 열린다면 적어도 중국, 대만 이북에서는 남쪽을 통과하는 것보다 북극항로가 거리상 더 유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