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구약과 신약의 관계. 신성욱 교수
상태바
(외부칼럼) 구약과 신약의 관계. 신성욱 교수
  • 박동현 기자
  • 승인 2021.02.22 02: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모세를 읽으며 예수님을 보다』란 책에 이런 말이 나온다.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신약 성경을 통해서만 구약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이 공식이 반대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직 우리가 타나크(구약)의 의미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때에만 신약 성경을 이해할 수 있다.”
한국어 성경들 

미국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에서 일어난 일이다. 구약과 신약 석-박사 과정을 전공하는 한국 목사들끼리 모여서 대화를 하다가 질문이 하나 제기됐다. '구약과 신약 중에서 어느 책이 더 중요할까?'라는 질문이다. 어떤 결론이 나왔을까? 당연히 구약을 전공하는 이는 구약이, 신약을 전공하는 이는 신약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Like Us on Facebook

구약이 더 중요하다는 사람들의 논리는, 구약이 신약보다 분량도 더 많고 신약보다 더 어렵고 깊이 있는 내용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신약보다는 구약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반면 신약이 더 중요하다는 사람들의 주장은, 구약은 메시아 예언에 관한 내용이지만, 신약은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예언이 성취된 때의 내용이기 때문에 신약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설교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지만, 석사과정에서 구약과 신약을 전공했기에 두 쪽 모두의 입장에 골고루 서본 경험이 있다. 당연히 구약을 전공할 땐 구약이 최고라 생각했고, 신약을 전공할 땐 신약이 최고라 생각했다. 그렇다. 사람은 현재 자기가 속하고 있는 단체나 학교나 전공과목을 제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어느 날 구약을 전공하고 가르치고 있는 한 교수가 이런 불만을 제기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다. 우리가 보통 성경 66권을 가리켜 ‘신구약’이라고 부르는데, 순서대로 하면 ‘구신약’으로 불러야 정상이라는 것이다. 순서대로 하면 맞는 얘기긴 한데 언제부터 또 어떤 이유로 ‘신구약’이라고 호칭하게 됐는지 궁금하긴 하다. 내 판단으로는 ‘구신약’이라고 호칭하는 것이 아무래도 어감상 어색하고 자연스럽지 못해서 ‘신구약’이라 하지 않았나 싶다.

필자 신성욱 교수는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설교학 교수이다.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에서 공부했음, University of Pretoria에서 공부했음, Calvin Theological Seminary에서 공부했음, 총신대 신학대학원에서 언어학 전공했다.

하지만 이에 관해서 불만을 제기한 교수의 생각엔 아무래도 구약보다는 신약을 더 중요시하는 발상에서 ‘신구약’이란 호칭이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이었던 것 같다.

셋 포스텔, 에이탄 바르, 에레즈 쪼레프가 공저한 『모세를 읽으며 예수님을 보다』란 책에 이런 말이 나온다.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신약 성경을 통해서만 구약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이 공식이 반대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직 우리가 타나크(구약)의 의미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때에만 신약 성경을 이해할 수 있다.”

대부분이 아는 상식으로는 신약 성경을 통해서 구약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선 그것을 뒤집어 엎는다.

구약 본문에 집중해야 신약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순서의 차이인데, 실은 엄청난 차이이다. 물론 구약으로 신약을 해석하고 신약으로도 구약을 해석함이 공히 필요하다.

여기서 포스트모던 시대의 '청중들에게 어필하는 설교'로 유명한 뉴욕 리디머 교회의 담임인 팀 켈러의 예를 하나 들어보자. 사무엘상 17장에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그는 이 본문을 가지고 이렇게 설명한다. "이 본문은 다윗이 골리앗과 싸워 이김으로 풍전등화에 놓여 사망의 위기에 봉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원자가 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지옥불에 떨어져야 할 우리를 영원한 사망에서 건지시는 구원자가 되셨음을 의미한다."

팀 켈러는 모든 본문에서 그리스도가 나타나야 한다고 가르치는 교수에게서 영향을 받은 사람이다. 따라서 그는 모든 본문을 예수님과 관련시켜 설교하고 적용한다. 하지만 이는 너무도 잘못된 생각이다. 어째서 모든 본문에서 예수님이 나와야 하는 건지, 왜 모든 본문을 예수님으로 풀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답이 없다.

‘모든 성경 구절을 억지로 예수님과 연관시켜 해석하는 자세는 비판 받아 마땅하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다윗을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시키는 것은 근거 없는 지나친 해석이다. 신약에 기록된 메시아 성취 내용을 근거로 해서 구약의 모든 구절들을 해석하거나 적용해버린다면 구약 본문 자체에 나타나는 저자의 의도는 상실되고 말 것이다.

일차적으로 중요한 것은 본문 저자의 의도이다. 그러면 사무엘상 17장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과 메시지는 뭘까?

 ‘골리앗처럼 대적 불가능한 시험이나 환란이 닥쳐올 때 다윗처럼 오직 하나님의 약속과 그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굳게 신뢰함으로 나아가면 승리는 우리의 것이다.’ 이 원포인트의 중요한 한 마디가 자기 독자들에게 저자가 심어주고자 하는 소중한 핵심 메시지인데, 이처럼 소중한 구약 본문의 메시지는 놓쳐버린 채 예수 그리스도에로 억지 연관시키려 함은 정말 우리로 하여금 숨막히게 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신약 성경을 인정하지 않는 유대인들이, 구약 본문만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아성을 발견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란 사실을 감안하고서라도, 그리스도와 전혀 무관한 본문마저 그분과 억지로 관련시키려 하는 자세는 문제가 심각하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 팀 켈러 아니고 우 켈러라도 성경은 성경대로 풀어야 한다. 아무리 구약을 예수 그리스도의 관점에서 해석해야 한다고 하더라도 모든 본문에서 그리스도를 무리하게 적용하려 함은 지나친 자세다.

끝으로 『모세를 읽으며 예수님을 보다』란 책에 나오는 다음의 내용을 다시 한 번 읽고 가슴에 되새겨보면 좋겠다.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신약 성경을 통해서만 구약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이 공식이 반대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직 우리가 타나크(구약)의 의미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때에만 신약 성경을 이해할 수 있다.” 아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