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칼럼> 인천국제공항의 '기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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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칼럼> 인천국제공항의 '기도실'
  • 류재광기자
  • 승인 2016.01.11 2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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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이 없다고 상상해 보세요(Imagine there's no heaven). 우리가 노력하면 그것은 쉬워요(it's easy if we try). 살해와 죽음이 없고(nothing to kill and die for) 종교도 없죠(and no religion too).” -존 레
최덕성 교수. 크리스천투데이 DB

인천국제공항에 기도실(Prayer Room)이 있다. 미국, 영국, 중국, 일본에서 보지 못한 공항 기도실이 대한민국 공항 안에 있다. 나는 출국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는 동안 기도하러 이곳에 들렀다. 기도실 안은 텅 비어 있다. 책걸상이 없다. 신을 벗고 마루에 올라야 한다. 이 기도실은 모든 사람들, 모든 종교인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일 게다. 특정 종교인들을 위한 공간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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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창조자 하나님,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교회당 안에서 올리는 기도만을 들으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불교 사찰 대웅전에서도 하나님께 기도한다. 예의에 벗어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말이다. 유일하신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시다. 참 신은 여호와 하나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어디서든지 기도한다. 그분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기에, 나는 언제든지 어디를 향해서든지 기도한다. 소리 내면서 하기도 하고 아무 말 없이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천국제공항 기도실에 들어섰을 때는 기도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이유가 있었다. 기도실에 들어가면 바닥에 새겨져 있는 큼직한 방향계가 눈에 들어온다. 동서남북을 가리키는 방향계를 갖춘 기도실, 이 공간은 틀림없이 무슬림들을 배려한 장소이다. 창조주 하나님께 기도를 하려고 하니 이슬람 테러집단들이 생각난다.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순교당한 수많은 기독인들이 떠오른다. 움찔한 느낌이 들자 기도할 맘이 사라진다.

여러 해 전, 천안아산역에서 서울역까지 고속열차에 올랐을 때, 입구 공간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백인이 있었다. 누구에게 기도했느냐고 하자 "위대한 알라에게"라고 답했다. 자신은 독일인이고 사업차 한국에 왔다고 했다. 사람들이 통행하는 출입구에서 기도하는 것은 결례라고 말해 주자, 기차가 그곳에 설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대전역과 천안아산역은 그다지 멀지 않다.

▲ 인천국제공항 내 기도실. ⓒ최덕성 교수 제공

무슬림의 하루는 기도로 시작하여 기도로 끝난다. 새벽부터 밤까지 하루 다섯 번 기도한다. 깨끗한 장소에서 얼굴을 씻고 메카를 향해 기도한다. 대한민국에서 메카의 방향은 서북서 285.8도로, 서쪽을 바라보고 약간 오른쪽으로 몸을 틀면 된다. 기도는 양손 엄지를 귓불 가까이 올리고 "알라후 아크바라(알라는 위대하다)"를 외는 것으로 시작하여 5가지 절차로 진행된다.

기독교의 요람이던 유럽은 더 이상 그 지위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유럽의 주류 기독교는 자유주의 신학의 안착과 종교다원주의·진리상대주의 신념 탓으로 극도로 퇴락했다. 몰락 직전 상태이다. 유럽교회는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또는 암과 같은 죽음의 병에 걸렸다. 그럼에도 신학을 하려고 유럽으로 유학을 가는 한국인들을 보면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든다.

황청은 최근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The Gifts and Calling of God are irrevocable)"라는 공식 문서를 통해 "유대인들을 개종시키려 하지 말라"면서 "유대인들은 구원을 받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필요가 없다(예수 없이 구원을 받았다)"고 말해 큰 논란을 일으켰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가 이미 확언한 바 있는 내용이다.

세계교회협의회(WCC) 중심으로 20세기에 등장한 신종 기독교는, 모든 종교가 구원의 길이라고 믿는다. 이러한 신념 구도는 예수를 믿어야 할 당위성을 가지지 못한다. 유럽에 기독인이 전무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종교' 차원의 기독교는 건재하고 있다. 그러나 이슬람에 항거하여 목숨을 바칠 정도의 기독교 신앙, 또는 이슬람을 막아낼 정도의 결속력을 가질 수 있는 기독인들이 없다고 함이 옳을 듯하다.

WCC는 부산에서 제10차 총회(2013)를 열었다. 대한민국과 한국교회도 거액을 제공했다. 김삼환 목사가 앞장섰고, 진보 신학자들이 적극 지지했다. 예장 통합, 기장, 감리회가 재정을 지원했다. 교회로 하여금 AIDS나 암에 걸리도록 도운 셈이다. 역사적 기독교 신앙의 진지를 허물고 복음 전도의 열의를 약화시키는 데 이바지했다. 이에 대한 논의는 필자의 <교황 신드롬(2014)>에 담겨 있다.

선교학자 이동주 박사(전 아시아연합신학대학교)는 한국개혁신학회에서 필자가 'WCC의 개종전도금지주의'라는 논문을 발표하자, 머지않아 대부분의 한국 여성들이 히잡 또는 부르카를 두르고 다닐 것으로 예측된다고 논평한 적이 있다. 대한민국 안에 기독인보다 훨씬 더 많은 무슬림이 생겨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알라에게 기도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한국교회가 무슬림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면 좋으련만, 그런 경우는 드물다. 실상은 그 반대다. 기독교 대학으로 알려진 모 대학에 교비 유학생으로 온 어느 무슬림은, 하숙집 주인과 어려 명의 동료 대학생들을 이슬람으로 개종시켰다고 한다. 이 정보가 사실이든 아니든, 나는 무슬림이 한국에서 기독교 신앙으로 개종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다.

기독교가 예수 구원 복음전도는 하지 않고 WCC가 추구하는 '미시오 데이(mission dei)'에 에너지를 쏟으며 기독교를 사회복음실천운동이나 윤리실천운동쯤으로 여기고 있는 동안, 이슬람은 역사 이래 최대로 강력하게 확산되고 있다. 기독교가 영적인 생명(zoe)에는 관심이 없고 생물학적 생명(bios)에만 집착하는 동안, 이슬람은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사로잡고 있다.

기독교 신앙의 요람이던 유럽은 난민 사태로 말미암아 돌이킬 수 없는 변화 직전에 있다. 수십만 명의 무슬림이 유럽으로 몰려들고 있다. 장차 3백만 명이 더 유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의 이슬람화는 돌이킬 수 없는 듯하다.

인천공항 기도실 바닥에 ‘나침반모양 ‘방향을 표시하고  ⓒ최덕성 교수 제공

이슬람 인구가 증가하면, 이들은 이슬람 관습, 심지어 이슬람 법인 샤리아를 자국의 법보다 우선시할 것이다. 유럽은 한두 세대 안에 이슬람화될 것 같다. 이슬람 군대가 732년 프랑스 투르, 1492년 스페인 그라나다, 1683년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에서 힘으로 이루지 못한 일을, 이제는 총 한 발 쏘지 않고 이루고 있는 것 같다. 장차 20년, 많이 걸려도 30년이면 유럽 대륙은 이민을 통한 이슬람 정복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일 것으로 보인다. 유럽은 기독교 사회에서 세속주의라는 '종교'로 개종했다. 세속화된 유럽 사회의 테마곡은 존 레논의 '이매진(Imagine)'이다.

“천국이 없다고 상상해 보세요(Imagine there's no heaven). 우리가 노력하면 그것은 쉬워요(it's easy if we try). 살해와 죽음이 없고(nothing to kill and die for) 종교도 없죠(and no religion too).” -존 레논의 '이매진(Imagine)' 중 일부

위 가사는 “종교를 없애면, 아무도 사람을 살해하려 하지 않을 것이고, 유럽을 지키려고 죽을 필요도 없다”는 뜻이다. 종교적 다양성을 위해 죽음을 마다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자동차 기어를 후진으로 두기 전에 중립을 거치는 것처럼, 유럽은 기독교 사회에서 떠나 세속화 영역으로 깊이 빠져들었다. 그리고 불가항력적인 형태로 이슬람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한국은 유럽 실패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 우리에게 희망은 없는가? 유럽이건 한국이건, 유일한 희망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다른 해결책은 없다. 하나님을 만난 자는 특별계시로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과 구원의 길을 '객관적 진리'를 수납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자유주의 신학과 진리상대주의·진리주관주의에 바탕을 둔 종교다원주의와 만인보편구원주의를 버린다.

예수 믿지 않는 유태인, 무슬림, 미지의 신을 찾는 자들, 양심에 따라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이 주어진다고 믿는 정박지 없는 신학을 버린다. 예수만이 그리스도이시며, 그분만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임을 고백한다.

"내가 누구를 보낼 것인가? 누가 우리를 대신하여 갈 것인가?"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사 6:8)".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믿지 않는 분의 이름을 어떻게 부를 수 있겠습니까? 또 들어보지도 못한 분을 어떻게 믿겠습니까? 말씀을 전해 주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롬 10:13-14)?"

 예수 구원의 도리를 전하는 복음전도자가 필요하다. 하나님은 지금도 일할 자를 찾고 계신다. 하나님의 주권은 인간의 책임을 배제하지 않으신다. 복음이 전해질 때 성령의 구원 역사가 일어난다. 신학교 입학을 고려하는 계절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고 있는가? 하나님이 당신을 복음전도자, 복음전도 특공대원으로 부르시지 않는가?

/최덕성교수

글쓴 이 최덕성은 신학자이다. 현재 브니엘신학교 총장(2013-)이자 교의학 석좌교수이다. 고려신학대학원-고신대학교 교수(1989-2009), 하버드대학교 객원교수(1997-1998)였다. <한국교회 친일파 전통>, <빛나는 논지 신나는 논문쓰기>, <에큐메니칼 운동과 다원주의>, <정통신학과 경건>, <신학충돌>, <교황신드롬>, , <위대한 이단자들> 등 약 20권을 저술했다. 미국 예일대학교(STM), 에모리대학교(Ph.D.)를 졸업했다. 한국복음주의신학회로부터 '신학자대상(2001)'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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